'퇴직연금 컨설팅 세계적 권위자' 피터 프롬니츠 濠머서 亞太지역 회장

위험 감수한 만큼 더 많은 금액 수령
정년앞둔연령대는확정급여(DB)형

세계적으로 확정기여형 선택 늘어
DB·DC형 장단점 충분히 숙지해야


"대부분의 나라에서 퇴직연금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는 근로자가 스스로 투자에 책임을 지는 확정기여형(DC) 방식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노동조합이 강한 기업이나 국가에서 그런 경향이 있죠.하지만 지난 수십년간의 트렌드를 보면 확정기여형의 비중이 훨씬 높아지게 됩니다. "

최근 방한한 피터 프롬니츠 머서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은 "호주는 퇴직연금모델 도입 초기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이 60%에 달했지만 지금은 5%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한국에도 비슷한 추세가 형성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프롬니츠 회장은 퇴직연금 제도분야의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퇴직연금 컨설팅 분야 1위인 머서에서 9년째 재직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 호주 정부와 함께 퇴직연금을 설계했다. 호주의 퇴직연금 모델은 2005년 퇴직연금제를 도입한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페루 등 '후발주자'들이 벤치마킹해 사용하고 있는 모델이다. 그에게 퇴직연금의 세계적 추세와 한국 퇴직연금의 운용방향에 대해 물었다.

"한국에는 아직 퇴직연금 제도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일시불 퇴직금'을 받아온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죠.하지만 인구 고령화가 점점 진행되면서 연금 형태로 지급하는 것이 개인과 사회 모두에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

프롬니츠 회장은 "퇴직연금 제도가 활성화되면 회사가 퇴직금을 지급하기 위해 적립하는 금액이 많아지고 생애 재무제표를 설계하기가 쉬워지므로 장기적으로 근로자들에게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퇴직연금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연금 급여가 사전에 확정되고 대신 기업의 퇴직금 적립 부담액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다. 반대로 확정기여형(DC)은 기업의 적립 부담액이 확정돼 있고 펀드 운용결과에 따라 근로자 연금 지급액이 변동하는 것을 말한다. 두 가지 방식은 기업이나 개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확정기여형은 근로자에게 불리하다'는 인식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둘 중 어느 하나가 반드시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한 뒤 "호주에서는 처음 퇴직연금모델을 도입할 때 60% 기업이 DB형,40%가 DC였으나 지금은 DB를 택하는 곳은 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호주의 법은 DC형 퇴직연금에 세제 혜택 등을 부여했고 DB형이 기업 회계 운용을 굉장히 까다롭게 만들어 결국 차츰 밀려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DC형은 일정 기간마다 일정 금액의 퇴직금을 적립하면 되지만 DB는 퇴직금 적립액(사외적립금)이 그때그때 다르거든요. 특히 기업 자산을 장부상 금액으로 평가하지 않고 실질 금액으로 평가하는 국제회계기준(IFRS)을 따를 경우 이는 아주 큰 위험요소(변수)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기업 회계 책임자(CFO) 입장에서는 DC가 훨씬 운용하기 편리하죠."

그는 이 같은 현상이 호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1년부터 IFRS를 도입하는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것.

그러나 최근과 같은 불황기에는 DC 퇴직연금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곤 한다. 정해진 만큼 받는 것이 아니라 투자한 결과에 따라 받는 DC 연금의 특성상,'쪼그라든 연금'을 받게 되는 이들은 갑자기 씀씀이를 줄이고 심할 경우 다른 채무를 갚지 못해 집을 압류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프롬니츠 회장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개인이 위험을 감수하는 DC 연금에서 그런 상황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 "이 때문에 DC 연금은 연령대별로 선호도가 다르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은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더 많은 연금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DC를 선호합니다. 반대로 나이든 사람들은 정해진 금액을 받는 DB를 택하죠."

그는 이를 좀 더 쉽게 풀었다. "예컨대 기업 재직기간이 40년이고 퇴직 후 30년간 연금을 받을 경우 이 사람은 모두 70년간 연금을 운용하게 되는데,70년간 7~8번의 불황이 찾아오겠지만 상승기도 올 것이므로 젊은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퇴직을 5년 앞두고 있다면 불황기가 갑자기 찾아올 경우 연금 규모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DB가 더 유리할 수 있고 이는 합리적인 판단이죠."

프롬니츠 회장은 또 "한국이 퇴직연금의 주식 투자 비중에 제한을 두고 있지만 결국에는 규제를 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도입 초기에는 위험도를 낮추려는 목적으로 주식투자 비중에 제한을 두지만,시간이 지나면 위험도를 국가가 규제하는 것이 불합리하기 때문에 풀어버립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

지난 1일 노동부는 조만간 신설사업장에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DB형과 달리 DC 퇴직연금을 도입하려는 한국 기업들의 경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관건은 근로자들이 DC형의 장·단점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 입니다. 좋은 투자를 했을 때는 연금 규모가 커질 수 있지만,투자를 잘못했을 때는 연금 규모가 작아지죠.그 단순한 원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이 커집니다.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적극적으로 알리고 교육하는 것,그것만 제대로 되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풀릴 것입니다. "

글=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