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이 10일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과 관련,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1심에 이어 또다시 무죄를 선언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저가 발행됐지만 이 때문에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는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허태학 박노빈 전.현직 경영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이전 에버랜드 1,2심 재판 결과와 상반돼 결국 최종 결론은 대법원에서 판가름나게 됐다.

◆회사에 손해 없어 배임죄 무죄

항소심 재판부는 경영권 편법승계 논란과 관련,이 전 회장에게 배임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배임죄는 회사에 손해를 끼쳐야 성립하는 범죄다. 이는 1심 때보다 삼성에 더 유리한 판결이다. 1심 재판부는 에버랜드 CB 저가발행에 대해 배임죄 무죄를,삼성SDS BW 저가발행에 대해서는 회사가 손해를 입긴 했지만 검찰이 이미 공소시효(7년)를 넘겼다는 이유로 '면소' 판결했다.

이전 재판의 경우 사채의 '배정방식'에 따라 유.무죄가 갈렸다. 1심 재판부는 에버랜드 CB의 경우 법인주주들이 인수를 포기하긴 했지만 당초에는 기존 주주에 대해 '주주배정'방식으로 발행됐다며 무죄를 선언했다. 삼성SDS BW 역시 '제3자'인 이재용 남매에게 저가에 발행됐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허태학 박노빈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 대한 1,2심 재판에선 에버랜드 CB 발행을 사실상 '제3자 배정'으로 봤다. 채권이 '주주배정' 방식으로 저가발행되면 기존 주식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새 주식의 가치상승만큼 이익을 얻게 돼 주주나 회사에 손해가 없다. 그러나 회사 밖의 '제3자'에게 헐값으로 배정되면 기존 주주가 손해를 보고 이는 결국 회사 손해로 연결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법리를 달리했다. 재판부는 "제3자 배정방식을 취하더라도 기존 주주들의 '부(富)'가 신규 주주들에게 이전되는 효과가 발생할 뿐 회사에는 손해가 없다"고 밝혔다.

◆이학수 전 부회장,벌금형에서 사회봉사로

삼성SDS BW 저가발행이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일부 피고인들의 형도 줄어들었다. 이학수 전 그룹 전략기획실 부회장,김인주 전 사장,최광해 전 부사장의 경우 벌금형이 모두 면제됐다. 1심에서는 이 전 부회장과 김 전 사장은 각 740억원,최 전 부사장은 400억원의 벌금형이 선고됐었다. 대신 사회봉사 명령이 부가됐다. 법원은 이 전 부회장과 김 전 사장은 각 320시간,최 전 부사장은 240시간 동안 자연.환경보호활동 내지 복지시설.단체봉사활동에 종사하도록 했다.

◆올해 중 최종 판가름날 것

이번 항소심은 허,박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에게 유죄판결했던 이전 1,2심 판결과 상반된다. 따라서 최종 판정은 대법원에 달렸다. 허,박씨 사건은 작년 5월29일 항소심 선고가 내려졌지만 삼성특검이 이 전 회장을 기소하면서 진행이 스톱된 상태다. 삼성특검법상 상고심은 항소심 선고일로부터 2개월 안에 선고하도록 규정돼 있어 두 사건이 올해 안에는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