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부터 '조금만 참아라'는 말만 되풀이해서 들은 지 벌써 1년째.마음은 이미 회사를 떠나 있었다. 길어도 2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영업직 업무가 벌써 2년 9월째를 접어들면서 마음 속의 불안감은 더해만 갔다. 아침마다 집을 나설 때면 '지금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학교 졸업 후 '아무생각 없이' 덜컥 입사했던 글로벌 주방용품 회사.하고 싶은 일도 적성도 모른 채 운좋게 입사했던 첫 직장이었다. 입사 후 처음 영업의 최일선인 매장에 배치 받았을 때조차 그냥 좋게 생각했다. '여기서 2년만 고생하면 원래 희망했던 마케팅 부서로 옮길 수 있을거야.' 부서 이동에 대한 희망 하나로 2년을 버텼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외국계 기업의 인력배치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이 바뀌었다. '꿈을 찾아 도전할 것인가, 조금 참고 현실에 안주할 것인가' 바로 그때 회사로부터 최후통첩이 날아 들었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부서 이동을 요청했지만 또다시 '6개월만 참아라'는 말을 들었다. 이제는 더 버틸 곳이 없었다.
그때 마침 모교인 서강대에 MBA스쿨이 새롭게 생겼다는 소식을 접했다. 32살.모든 것이 캄캄한 안갯속인 30대 초반에 또다시 미래가 불확실한 대학원행을 결심했다. 이왕에 MBA스쿨을 갈 바엔 해외 MBA스쿨과 확실히 연계된 곳이 좋을 것 같았다. 마침 서강대 MBA스쿨은 영국 내 랭킹 3위 비즈니스 스쿨이자 재무·해상 분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카스 비즈니스스쿨과 복수학위를 맺고 있었다.
정신없이 1학기가 지나가고 전공 결정 시기가 다가왔다. 재무관리 전공인 홍광헌 교수님 방을 노크했다. "저 교수님 영문학도인 제가 금융 분야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제가 32살로 적은 나이도 아닌데…." 교수님의 한 마디가 엉킨 고민의 실타래를 순식간에 풀어버렸다.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자신감을 가져."
2008년 5월.영국 카스 비즈니스 스쿨에서의 6개월이 끝나갈 무렵.인터넷으로 입사지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입사하고 싶었던 기업은행 입사지원서에 공을 들였다. 뜻하지 않은 기쁜 소식이 날아든 것은 아직 '카스'에서의 생활이 끝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기업은행 측에 요청한 끝에 영국 런던 현지 지점에서 1차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행운은 나의 편이었다. 3개월의 긴 인터뷰 끝에 결국 꿈에도 그리던 기업은행의 입사 티켓을 거머 쥐었다. 꼭 가고 싶었던 투자은행(IB) 분야였다. 부모님은 물론 친구들의 축하 전화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