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MBA] 장이반(연세대 MBA 1기)‥문화·언어장벽 뚫은 교포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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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반씨는 현재 삼성건설 해외개발영업팀 대리로 근무 중 이다. 주된 임무는 북미 부동산 시장을 살피고 투자처를 찾는 것. 그는 "금융 관련 업무를 할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며 "새로운 적성을 찾은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되겠지.설마 산 입에 풀칠이야 하겠어.'지금 생각하면 절반은 용감했고,절반은 무모했다.
2006년 초 무작정 한국으로 왔다.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를 따라서였다. 미국에서 교포 2세로 태어나 남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다녔지만 그보다 아내가 더 소중했다.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없다.
한국에서의 첫 6개월은 악몽 같았다. 직접 겪은 한국은 미국에서 상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 유난히 쌀쌀하게 느껴졌던 그해 겨울,무뚝뚝한 표정의 사람들이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따뜻한 조국의 이미지는 찾을 수 없었다.
마음도 스산한데 씁쓸한 소식들이 이어졌다. 입사원서를 넣었던 회사에 줄줄이 낙방했다. 심지어 미국에서 몸을 담았던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의 한국지사 면접에서도 떨어졌다. 금융 업계에 종사했던 경력을 살려 외국계 금융회사에 지원했지만 설 자리는 없었다.
문제는 언어 구사력과 문화 적응력이었다. 포기 할까,미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한국에서 내가 일할 곳은 정녕 없는 걸일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 아내가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제안을 했다. 한국에서 MBA스쿨이 생겼으니 한번 가보라는 것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큰 고민없이 연세대를 선택했고,별 어려움이 합격했다. 2006년 8월에 암울한 백수 생활을 접고 연대에서의 새 삶이 시작됐다. 아내도 잘 됐다며 축하해줬다. 다양한 경력과 국적의 학생 36명이 모여 힘차게 출발한 연세대 글로벌 MBA 1기.정규수업에서보다도 이들과의 술자리에서 한국을 배웠다.
한국은 나이 순이다. 한마디로 '짬밥'이 최고다. 서양인의 관점에선 이해가 쉽지 않다. 미국 피델리티에서 근무할 때는 모든 직원의 연봉이 개인 성과를 바탕으로 책정됐다. 입사 동기들의 연봉조차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로마에 가선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것.이 코드를 이해하고 나니 학교 생활이 한결 수월해졌다. 지금 한국 기업의 조직 문화에 별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는 것도 MBA에서 배운 게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한국어 구사력도 일취월장했다. MBA스쿨은 걸림돌이 됐던 문화와 언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줬다.
'어떻게든 되겠지.설마 산 입에 풀칠이야 하겠어.'지금 생각하면 절반은 용감했고,절반은 무모했다.
2006년 초 무작정 한국으로 왔다.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를 따라서였다. 미국에서 교포 2세로 태어나 남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다녔지만 그보다 아내가 더 소중했다.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없다.
한국에서의 첫 6개월은 악몽 같았다. 직접 겪은 한국은 미국에서 상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 유난히 쌀쌀하게 느껴졌던 그해 겨울,무뚝뚝한 표정의 사람들이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따뜻한 조국의 이미지는 찾을 수 없었다.
마음도 스산한데 씁쓸한 소식들이 이어졌다. 입사원서를 넣었던 회사에 줄줄이 낙방했다. 심지어 미국에서 몸을 담았던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의 한국지사 면접에서도 떨어졌다. 금융 업계에 종사했던 경력을 살려 외국계 금융회사에 지원했지만 설 자리는 없었다.
문제는 언어 구사력과 문화 적응력이었다. 포기 할까,미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한국에서 내가 일할 곳은 정녕 없는 걸일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 아내가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제안을 했다. 한국에서 MBA스쿨이 생겼으니 한번 가보라는 것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큰 고민없이 연세대를 선택했고,별 어려움이 합격했다. 2006년 8월에 암울한 백수 생활을 접고 연대에서의 새 삶이 시작됐다. 아내도 잘 됐다며 축하해줬다. 다양한 경력과 국적의 학생 36명이 모여 힘차게 출발한 연세대 글로벌 MBA 1기.정규수업에서보다도 이들과의 술자리에서 한국을 배웠다.
한국은 나이 순이다. 한마디로 '짬밥'이 최고다. 서양인의 관점에선 이해가 쉽지 않다. 미국 피델리티에서 근무할 때는 모든 직원의 연봉이 개인 성과를 바탕으로 책정됐다. 입사 동기들의 연봉조차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로마에 가선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것.이 코드를 이해하고 나니 학교 생활이 한결 수월해졌다. 지금 한국 기업의 조직 문화에 별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는 것도 MBA에서 배운 게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한국어 구사력도 일취월장했다. MBA스쿨은 걸림돌이 됐던 문화와 언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