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 중앙대 정경대학장ㆍ경제학 >

지난 한 주 동안 미국발 금융위기의 심화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대폭락했다. 이 와중에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증가로,달러화 가치는 엔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통화에 대해 오히려 상승했다. 특히 우리 원화가치는 급격히 하락해 달러당 1500원대까지 위협하다가 다시 1300원대로 회복됐지만,하루에도 235원이나 등락하는 등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현재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보다는 훨씬 양호하지만,원화가치만 가지고 보면 그 당시와 비슷하다. 가장 큰 원인은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여기다 위기에 몰린 외국투자자들이 우리 자본시장에서 주식을 처분해 환수해가는 바람에 자본수지까지 적자로 돌아선 상태다.

한편 국제금융시장 경색으로 우리 금융회사들의 외화채권 발행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며,오히려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의 상환을 위해 외화를 마련해야 할 형편이다. 그러니 원화의 환율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부족한 외화의 마지막 공급처는 정부의 외환보유액이다. 그동안 외환시장에서 200억달러 정도 사용하고 현재 외환보유액은 2200억달러 정도 남아 있다. 이만큼의 외환보유액이 있으면 지금처럼 긴박한 상황에서는 훨씬 더 과감하게 외환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정부는 외환시장에 대규모 물량개입은 자제하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당장 사용 가능한 정부의 가용외환보유 액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구심으로 인해 외화를 필요로 하는 민간 기업들이 과다하게 외화 확보 경쟁에 나서면서,외환시장이 더욱 불안해진 측면이 있다.

지난달 정부가 10억달러 규모의 외평채 발행을 가산금리 문제로 연기한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여기다 국내 은행들의 예금대비 대출비율(예대비율)이 136%로 잘못 알려지면서 우리 은행들의 신용도가 추락했다. 다른 국가들처럼,예금의 성격이 강한 양도성예금증서(CD)까지 전체 예금액에 포함시키면 우리 은행들의 예대비율은 105.5%로 미국 은행들의 112%보다도 낮다. 또한 키고(KIKO)로 인해 우리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로 인해 기업과 은행이 입을 손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다. 이러한 왜곡된 정보나 정보의 불확실성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가 급격하게 상실됐다. 지금처럼 살얼음판인 상황에서는 정부와 우리 금융회사들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실상을 그대로 밝혀야 불필요하게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우리 국채의 신용도를 나타내는 외평채 가산금리는 현재 317bps로 중국의 236bps는 물론 말레이시아의 282bps보다도 높다. 이같이 외평채 가산금리가 높아진 데는 정부의 경제운용 방식의 미숙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경상수지 적자다. 우리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은 물론 배럴당 140달러대 수준까지 상승했던 국제유가 때문이다. 그러나 원유 가격 폭등에도 불구하고 일본 중국 등 경쟁국들은 계속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거나 적자 폭이 우리처럼 심하지 않다.

우리 경상수지의 유가의존도가 큰 이유는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에너지 효율은 일본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동안 우리는 에너지사용 효율성 제고를 등한히 해왔다. 전력요금이나 유가정책이 산업용에 매우 유리하게 돼 있어 기업들이 에너지 효율개선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대처능력 제고와 더불어,에너지 효율성 증대와 같은 구조적인 경상수지 개선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