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통신사들과 곧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케이블방송에 채워진 족쇄들은 풀리지 않고 있어 답답할 뿐이다. " 지난 10일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보류되자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관계자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개정안에는 방송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규제 완화 조치들이 담겨 있다. 먼저 SO들의 덩치 규제를 기존 '전국 케이블방송 사업권역(77곳) 5분의 1 이상 소유 금지'에서 '가입자 기준 3분의 1 초과 금지'로 바꿨다. 인수ㆍ합병 등을 통해 국내에도 초대형 케이블방송이 생길 수 있는 길을 터놓은 셈이다. 이 조항은 케이블방송 업계의 경쟁력과도 무관치 않다. 빠르면 이달부터 KT,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LG데이콤 등이 인터넷TV(IPTV)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에 따라 케이블방송 업계는 통신사들의 물량 공세에 맞설 수 있게 덩치 키우기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개정안 보류로 대기업의 풍부한 자금을 방송산업에 끌어들여 세계적 미디어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 정책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방통위는 시행령을 바꿔 지상파방송과 케이블 보도ㆍ종합편성 채널에 대한 대기업의 소유 제한을 대폭 완화할 방침이었다. 자산 3조원 미만인 소유 제한 기준을 10조원 미만으로 완화하면 LS 동부 대림 현대 등 34개 그룹이 일부 지상파나 보도전문채널 등을 인수할 수 있게 된다.

방통위는 정치권으로 '공'을 넘기는 형태로 방송법 개정안을 보류했다. 국회에 개정안을 설명하는 노력을 기울이되 여의치 않으면 공청회를 한 번 더 연다는 것이다.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국회 상임위에서 설명회를 갖기로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여야 추천을 받은 방통위원들이 상반된 의견을 주장했음을 감안하면 여야 정치 공방으로 비화하면서 처리가 지연될 가능성도 크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1년 반 넘게 벌여온 논쟁을 결론짓지 못하고 또다시 보류함으로써 방송산업 경쟁력 제고도 그만큼 요원하게 됐다.

박영태 산업부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