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천지가 여인네의 붉은 치맛자락을 두른 듯하다. 단풍이 반도의 허리춤에 와 있어 그 모양새가 제법 난다. 산사람들은 산이 몸살날까 걱정돼 가을엔 산행을 일부러 줄인다고도 하지만 보통사람은 이때 아니면 나무 한그루 제대로 구경하기 힘들다.

억새도 황금 물결을 이루고 있다. 세월의 끝자락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이 단풍이라면,넉넉한 마음으로 만추를 반기는 것이 억새다. 억새는 대부분 산 정상까지 올라야 제대로 구경할 수 있다. 몸은 힘들지만 그만큼 드라마틱한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단풍맞이,역사 공부도 함께

경북 영주 소백산 부석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로 국보 제18호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이 있어 아이들의 역사 공부에도 좋다.

부석사는 붉은 물감을 뿌려대는 단풍으로 유명하다. 늦가을에는 환상적인 금빛 은행나무 길과 조우할 수 있어 더욱 운치 있다. 특히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는 산사 특유의 고즈넉한 멋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천왕문을 지나 아홉 석축을 잇는 계단을 오르면 가을빛을 머금은 절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안양루에 서서 절 아래를 내려다보면 발 아래 동그란 산사의 모습이 눈 안에 가득 담긴다.

경남 합천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다. 수많은 보물들과 함께 청량사,백연암,홍제암 등 75개의 부속 말사와 15개의 부속 암자가 있다. 2시간30분이면 해인사에서 출발해 마애불입상까지 다녀올 수 있어 단풍놀이가 금세 역사유적 탐방길이 된다.

국립공원 매표소에서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홍류동 계곡은 붉은 단풍잎이 떠내려가는 계곡물이 마치 물결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길 양 옆으로 곱게 늘어져 있는 단풍잎은 고즈넉한 절집의 풍광과 아울러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계곡 사이 사이에는 최치원의 시구 등을 새겨 놓은 큰 바위들도 많다.

주왕산과 내장산은 단풍과 함께 주변 먹거리로도 유명하다. 주왕산은 학소대와 주방계곡의 단풍이 좋다. 바위벽에 붙어 있는 돌단풍을 볼 수 있다. 군데군데 바위 틈새를 비집고 나온 오색단풍이 계곡에 비친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단풍 구경이 끝나면 달기약수로 만든 닭백숙도 먹어보자.고기 맛이 담백하다.

내장산을 갈 때 수많은 인파가 걱정된다면 장성 백양사를 추천한다. 백양사는 특히 붉은 기운이 가득한 애기단풍으로 유명하다. 백양사 여행길에서 풍천장어는 꼭 먹어봐야 한다. 바닷물과 민물이 어우러지는 곳에서 잡히는 장어를 뜻하는 풍천장어는 이 지역 특산물인 복분자 술과 궁합이 맞다.

■억새,축제도 한창

민둥산의 억새는 어른 머리 위로까지 자랄 만큼 키가 커서 넘실거리는 모습이 어느 곳보다 멋지다. 정상의 산불감시초소에서 보는 억새밭 풍경이 환상적이다. 증산초등학교 쪽 능선과 반대편의 지억산 쪽 능선까지 억새의 은빛 꽃물결이 넘실댄다. 해질녘이 더 장관이다. 온 산이 황금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빛난다. 다음 달 2일까지 억새축제를 벌인다. 정선아리랑 창극단 공연,불꽃놀이,음악회,정선아리랑 장터 공연 등도 펼쳐진다.

포천 명성산 억새밭은 억새군락지로 치면 전국의 5대 명산에 든다. 명성산은 후삼국시대 왕건에게 쫓긴 궁예가 크게 울 때 산도 함께 따라서 울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일까지 산정호수 명성산 억새꽃 축제가 열린다. 억새밭음악회가 열리고 현장에서는 먹거리촌과 특산물 판매장이 들어선다.

장흥 천관산은 정상의 억새밭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남해바다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산 아래서는 억새밭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지만 정상 일대가 평원처럼 펼쳐져 꼭대기까지 올라서야 억새가 보인다. 산능성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바위 봉우리들도 장관이다.

광주 무등산 억새밭은 중머리재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서 서석대 입구까지 펼쳐진다. 중머리재는 말 그대로 스님의 머리통같이 밋밋하게 생겼다. 그만큼 산행 코스가 편하다. 증심사에서 올라가는 길에는 보리밥집들이 있는데 5000원에 반찬이 20여가지가 나온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