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수석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기업·도시·국가 할 것 없이 디자인 전쟁

겉치레보다 편의성과 공감대 끌어내야

디자인은 힘이다. 휴대폰의 시장점유율을 좌우하는 건 기능보다 색다름이다. 가전제품도 다르지 않다. 전기주전자와 가습기 같은 소형은 물론 냉장고와 에어컨 같은 대형도 마찬가지다. 디자인은 매력이다. 옷과 구두,건물에 이르기까지 독특하되 튀지 않고 세련된 디자인은 눈을 사로잡고 마음을 설레게 한다.

디자인은 돈이다. 에르메스 넥타이는 20만원이 넘고,티파니 보석류는 같은 크기의 일반 제품보다 갑절 이상 비싸다. 남다른 구조와 외관으로 랜드마크가 된 빌딩의 임대료는 다른 곳보다 높다. 디자인이 곧 경쟁력이라는 얘기다. 소득수준이 높아진 데다 기술의 평준화 속도가 빨라진 결과다.

세계의 기업과 도시,정부가 '디자인'을 21세기 신 성장동력이자 국제화 및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핵심으로 설정한 까닭이다. 실제 일본에선 총리 주재로 국가브랜드를 찾는 '신일본 문화양식' 전략을 이행 중이고,영국도 '창조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차원 전담기구를 설치해 공공디자인 우선 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 기업과 정부,지방자치단체 역시 독창적 디자인 및 그것을 바탕으로 한 브랜드 창출에 팔을 걷어붙였다. 제품뿐만 아니라 주거공간에도 다양한 색채와 형태의 디자인을 도입,브랜드 가치를 높이고자 심혈을 기울인다. 아파트 거실 벽면과 조명을 세련되게,주방을 남다르게 꾸밈으로써 눈을 홀린다.

그러나 집은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대리석 세면기보다 중요한 건 구조다. 안방과 부엌 외에 작은 방과 현관도 넓어야 한다. 신발장 아래쪽은 미닫이로 해주는 세심함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위층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신경써줘야 마땅하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지자체마다 공공디자인에 힘을 쏟거니와 그 선두에 서울시가 섰다.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2010년 이전에 일차적인 디자인서울을 완성한다는 목표다. 친환경 문화도시,디자인 중심도시에 이르는 과정의 하나로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도 개최 중이다.

볼거리는 늘어날 테고 거리는 아름다워질 게 틀림없다. 그러나 외관 치장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누구나 편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에너지를 절약한답시고 공공기관 건물 5층 미만엔 엘리베이터를 운행하지 않아 거동 불편자들을 힘겹게 하면서 만든 반포대교 분수는 반갑지 않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에서 우선돼야 할 일은 자전거에 점령된 기존 강변길 외에 보도를 만들고 벤치를 늘리는 것이다. 조형물 설치는 그 다음이어야 맞다. 시청 재건축 못지않게 주위를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 공사한답시고 보도블록을 파헤쳐 놓고,마구 설치한 배전함과 주차방지용 돌덩이 탓에 휠체어 통행이 힘든 상태가 계속되는 한 디자인 서울은 헛구호일 수 있다.

제품이건 아파트건 도시건 치장을 넘어 사용자의 편의성과 공감대를 바탕으로 감동을 끌어내야 참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디자인으로 유명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정책 기본은 '깨끗함과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한다. 곳곳에 놓인 의자,언덕 위 유적지에 오르기 쉽도록 설치한 에스컬레이터가 생겨난 이유다.

'디자인은 공기'라는 말처럼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건 역사와 전통,인간에 대한 배려의 흔적이지 누군가에게 보여주려 급조한 것이 아니다. 디자인서울,디자인강국이 되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장기적 안목과 체계적인 준비,신중한 정책과 일관성이다. 실무를 담당하는 기관의 상호협력 및 구성원들과의 대화 또한 필수적이다. 이런 일들이 선행돼야 이명박 대통령이 얘기한 '임기 중 대한민국 국가브랜드 가치의 선진국 수준 향상'도 가능하고,'창조적이고 멋진 대한민국'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