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의 한 대기업 주재원인 K 부장.그는 며칠 전 가족회의를 열고 긴축을 선언했다. 아이들에겐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학교 공부에 충실하라고 일렀다. 자신 역시 주말이면 즐기던 골프를 끊기로 했다. 그는 "회사에서 집값을 대주긴 하지만 위안화로 나오는 주재비는 많지 않다. 한국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을 환전해서 생활하고 있는데 1위안이 200원으로 뛰니까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고 호소했다.

이곳에서 의류업을 하는 K 사장도 마찬가지다. 그의 딸은 베이징의 한 국제학교에 다닌다. 이 학교는 한국과 달리 가을부터 신학기가 시작된다. 지난 6월 18만위안(약 3600만원)이 넘는 1년 학비통지서를 받았다. 한꺼번에 내지 않고 3학기동안 나눠내기로 했다. K 사장은 "목돈이 없어서 1학기분 6만위안(1200만원)을 냈는데 환율이 급등해 나머지 학비가 1년 학비하고 엇비슷하게 남았다"고 한숨을 지었다.

작년 이맘 때 1위안에 120원 정도 하던 위안화 환율이 1위안에 200원으로 뛰면서 베이징의 한국인 사회가 초비상이다. 위안화가 아닌 원화로 월급을 받는 기업 주재원들은 소득이 거의 절반으로 깎였다. 원화로 송금을 받아 베이징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나 단기 유학온 학생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한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베이징 왕징의 식당가는 썰렁하기만 하다. 한 여행사 사장은 "1인당 75만원짜리 상품을 팔아 60명의 단체손님을 데려왔는데 한 사람에 6만원씩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환율은 국가 간 화폐를 교환하는 비율이다. 한 나라의 경제력은 환율을 통해 나타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는 중국의 위안화 가치가 장기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반면 원화 가치가 급락한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취약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 사람들의 눈은 요즘 많이 달라졌다. 베이징 대학에서 정치경제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천바오친씨는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었으면서도 거기서 큰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 중국 기업인은 "한국의 질 좋은 제품을 싼 값에 중국에서 팔 수 있을 것 같다"며 좋은 상품의 추천을 부탁했다. 중국은 물가가 오른 데다 위안화 강세이니 '고품질 저가격'의 한국 제품을 판매하면 좋은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미 중국사람들의 발빠른 상혼은 이 점을 간파했다. 한국 관광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다. 연초보다 40% 싼 값에 한국에 갈 수 있다는 선전문구가 따라붙는다. 중국이 싸다고 한국사람들이 밀려오던 것에서 입장은 이렇게 바뀌었다.

중국은 지난 주말 끝난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7기 3중전회)에서 농촌개혁을 통한 내수부양을 정책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세계가 불경기에 빠지는 만큼 수출이 아닌 내수로 성장에너지를 얻겠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은 어떤 해결방법도 제시되지 못한 채 허덕이는 모습이다. 국민들의 걱정은 그래서 쌓여만 가는 것 같다. 위정자들의 불찰인지,경제구조 자체가 취약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바다 건너 남의 나라에서 바라보는 금융위기의 파고에 휩쓸린 조국의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베이징=조주현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