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가 위축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 붕괴에 따른 자산가치 감소와 실업 증가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버려 소매업체들의 매출이 급격히 줄고 있다. 미국 소매업체협회(NRF)는 2002년 이후 최악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을 것으로 예고했다. 11월,12월 두 달 동안 소매업 매출이 4704억달러로,증가율이 지난 10년간의 평균 신장률(4.4%)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2.2%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인 RBC캐피털마켓의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40%가량은 연말 쇼핑 시즌에 가전제품 등의 구입을 자제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쇼핑 시즌에 컴퓨터 휴대폰 등 전자제품 소비가 위축될 경우 관련 업체들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자동차 판매난도 갈수록 심해져 올 들어서만 자동차딜러 600여곳이 문을 닫았다.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 위축은 기업들이 경기침체를 우려해 고용을 줄인 결과이기도 하다. 9월 중 실업률은 5년 만의 최고 수준인 6.1%로 치솟았다. 경기침체로 실업률은 더 올라갈 것이란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13일 하버드 경영대학원 백주년 기념식에서 "가계와 정부의 높은 채무 부담이 미국을 경기침체로 몰고 갈 것"이라며 "실업률이 9% 이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침체가 심각해질 수 있다"며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실업률이 10%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일본처럼 L자형의 장기침체에 빠질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주택시장 붕괴도 경기침체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신규 주택판매는 8월 중 8.3% 감소했고,주택가격은 1년 전에 비해 7.5% 떨어졌다.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는 "주택가격 하락으로 경기침체는 이미 시작됐으며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될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미 의회는 실물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신뉴딜정책' 입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 직격탄을 맞은 주 등을 지원하기 위해 재정을 쏟아부어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늘리자는 계획이다. 규모는 1500억달러 정도로 예상된다. 올 상반기 단행된 1차 경기부양책(1680억달러)에 버금가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바니 프랭크 하원 금융위원장은 "대선 후 의회가 열리면 경기부양법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