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의 80~90%까지 빌려줘 … 집값 떨어져 경매해도 원금 못건져

할부금융업체와 상호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 회사들과 대부업체들이 집값 하락으로 담보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 상호저축은행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전용면적 165㎡(50평)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빌려준 대출금 23억9100만원을 못받자 경매를 신청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9억3600만원에 낙찰됐다. 대출금보다 4억5500만원 낮은 가격이다. 해당 아파트에 또 돈을 빌려준 캐피털 업체 두 곳도 총 1억6300만원의 채권에 대해 가압류를 설정한 상태였다. 금융회사 3곳은 6억1800만원의 부실채권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이처럼 제2금융권과 대부업계의 부실대출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국내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40~60%인 은행권과는 달리 80~90%까지 돈을 빌려준 상황에서 주택값이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미국에 비해 금융위기 가능성이 낮지만 제2금융권 등에서의 주택담보 부실채권이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매정보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낙찰가액이 채권청구액보다 낮았던 전국 주택 경매건수는 8월 392건에서 9월 475건,이달에는 13일까지만 175건에 이르렀다. 지지옥션은 이 같은 추세라면 이달에는 500건을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데도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의 과도한 집담보 대출 영업은 계속되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방송공사(KBS) 별관 일대 아파트 밀집지역.곳곳에 할부금융회사와 대부업체 등이 내건 '아파트 100% 추가 담보대출''○○아파트 특판대출'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한 아파트 입구에도 이런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 가운데 '100% 추가대출'을 해준다는 대부업체에 전화를 해봤다. 인근의 시세 약 5억원(국민은행 부동산시세 기준)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 대출 3억5000만원을 끼고 돈을 추가로 빌리겠다고 하자 담당 직원은 "요즘 주택거래가 얼어붙어 아파트값 5억원을 꽉 채워 1억5000만원을 빌려주기는 힘들고 1억원까지 빌려줄 수 있다"며 "이자는 2부5리에서 3부(연 30~36%) 정도고 오늘 당장 대출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기존 은행 대출을 합하면 아파트 시세의 총 90%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셈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주택담보대출을 선전하는 전단지가 차량 와이퍼 곳곳에 끼워져 있었다. 국민은행 시세 4억6200만원짜리 아파트를 85%(약 3억9720만원)까지 빌려준다는 내용이었다. 인근 A중개업소에 물어보자 이곳 공인중개사는 "3억9000만원에도 매수자를 찾기가 힘든 아파트"라고 귀띔했다.

이러다보니 연체율이 위험 수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0.38%인데 비해 제2금융권에서는 저축은행이 6.31%,상호금융 2.45%,카드사와 할부금융회사 등 여신전문 금융회사 1.99% 등으로 은행권 연체율을 크게 웃돌고 있다.

제2금융권은 개인에 대해서는 LTV를 50~70% 적용하지만 사업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적용이 없다. 이에 따라 상당수 금융회사들이 개인에게 사업자 등록을 하도록 해 80~90%까지 빌려주는 상황이다. 이런 편법으로 빌려주면 금리를 더 받고 만기도 빨라 부실 가능성이 더 커진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은 "제2금융권의 사업자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도 제한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이문용/양승석 인턴(한국외대 3.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