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도쿄'] 광기… 소외… 사랑… 도쿄의 3色 판타지
봉준호 감독이 '괴물' 이후 첫 작품으로 옴니버스 영화 '도쿄'를 23일 선보인다. 봉 감독이 '퐁네프의 연인들'의 레오 카락스 감독,'이터널 선샤인'의 미셀 공드리 감독 등과 함께 만든 도쿄에 관한 판타지다. 공드리 감독은 도쿄를 현대인의 소외가 가득찬 곳으로 봤고,카락스 감독은 광기가 잠복한 도시로 그렸지만 봉 감독은 사랑의 기운이 충만한 곳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흔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히키코모리'와 '지진' 등 일본적인 소재를 빌려 독특한 양식으로 표현했다. 히키코모리는 방안에 틀어박혀 지내면서 외부인과 접촉을 극단적으로 꺼리는 사람들을 뜻한다.

주인공(가가와 데루유키)은 10년째 집안에서만 지내다가 어느날 집에 온 피자배달부(아오이 유우)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때마침 지진이 닥치고 주인공은 지진의 충격으로 쓰러진 그녀를 관찰하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땅과 집의 흔들림이 두 사람 마음의 흔들림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히키코모리를 내세운 만큼 영화의 대부분은 실내에서 촬영됐다. 좁은 방안에서 주인공의 다채로운 표정,잘 정돈된 책장 등을 다양한 앵글로 포착한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디테일에 집착하는 변태는 아니지만 좁은 공간 촬영인 만큼 망원경이나 돋보기가 아니라 현미경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일본 여행 중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 지하철에서 주변인과 접촉하지 않으려고 묘하게 위축돼 있는 일본인의 모습을 극대화시켜 그와 정반대로 치닫는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주역을 맡은 가가와 데루유키는 "많은 일본인들이 히키코모리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봉 감독과 3주간 촬영하면서 스태프들이 그를 만지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영화 중 봉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가장 좋아하며 진지함 속에 숨어있는 코믹한 요소가 한국 영화의 힘이라고 평가했다.

레오 카락스 감독은 하수도 맨홀에서 광인이 출현해 시민들을 다치게 하는 상황을 그려낸다. 하수도 속에 있는 낡은 일장기는 군국주의를 상징하며 광인의 출현은 일본인 속에 내재한 광기를 의미한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지방에서 상경한 소녀가 외로움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의자로 변하면서 타인에게 쓸모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상황을 보여준다. 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