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봤다. 주말연속극이었는데 방송사 PD인 주인공이 프로그램 첫방송을 앞두고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내용이었다. 어렵게 진행자를 섭외한 그는 하루 전 리허설을 마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당일 아침 예쁜 옷을 골라입고 미장원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먹는 것도 삼간다.

"네가 진행자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는 물음에 "최선을 다하고 싶으니까"라고 답한다. 드라마라지만 이런 게 사람 마음일 것이다. 이사할 때나 결혼할 때 길일(吉日)을 고르는 것도 같은 심정일 게 틀림없다. 실제 다른 건 몰라도 혼인날과 이삿날은 택일(擇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결혼 즉시 자녀를 분가시키는 부모들은 신혼부부 살림집에 가구 들이는 날을 잡기도 한다. 그 날짜에 맞춰 가구가 준비되지 않으면 전기밥솥이라도 먼저 가져간다. 말로는 "그런 게 무슨 대수겠느냐"고 하면서도 속으론 "기왕이면 좋다는 대로 하지 뭘" 하는 셈이다. 이유야 단순하기 그지 없다.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살다 보면 곤경에 처할 때도 있다는 걸 아는 부모들이 'MC 바뀐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PD처럼 매사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날짜는 날짜에 불과한 모양이다. 8자가 세 개나 겹쳐 천년만의 대길일(大吉日)이라던 8월8일 혼인신고를 한 중국인 상당수가 이혼 상담에 나섰다는 보도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이기도 했던 그 날짜로 혼인등기증을 받기 위해 만난지 얼마 안돼 서류 접수부터 했던 사람들이 이후 결혼에 따른 세부적인 문제들로 다투다 아예 갈라서는 것까지 고려한다는 얘기다. '결혼은 상상 끝 현실 시작'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뭐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택일도 좋지만 그런 일에 너무 매이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게 되기 십상이다. 자연히 무심코 넘길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문제를 키울 수 있다. 모르는 게 약이라거나 둔한 것도 힘이라고 하는 이유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고 괜스레 불안해하면서 점술 등에 매달리지 말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