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폭락하던 날 5분 답변하려 6시간 '발동동'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16일 열린 정무위 국감장에는 금융계 최고경영자(CEO)들이 증인으로 대거 출석했다. 코스피가 130포인트 떨어지고 원ㆍ달러 환율이 100원이나 오르며 시장이 요동치는 동안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과 김중회 KB금융지주 사장,이정철 우리CS자산운용 사장,김영주 리먼브러더스 서울 지사장 등은 국감장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특히 박 사장과 이 사장은 회사에서 운용하던 파생상품의 원금손실을 이유로,김 사장은 자신이 사장에 추천된 경위와 관련해 증인으로 불려나왔지만 질의 한번 받지 않았거나 간단한 질문 한두 가지가 고작이었다. 김 지사장은 3명의 의원으로부터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절차를 알았나" "5월에 리먼브러더스 임원들이 서울을 방문한 걸 알았나"는 등의 질문을 받았지만 "나는 그런 내용을 알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아 몰랐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외국계 금융회사의 의사결정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증인으로 채택한 결과다. 결국 증인으로 나온 민간 금융회사 대표들은 끝까지 국감장에 나온 이유조차 모른 채 자리를 지켜야 했다.

먼저 질의를 받은 김 지사장이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두 차례에 걸쳐 자리를 비울 수 있도록 양해를 구했지만 의원들은 "더 물어볼 게 있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속이 탄 A사 사장은 기자와 만나 "질문도 없고,가고 싶은데 가란 말도 없고 곤란하다"면서 "시장도 어렵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B사 관계자는 "이렇게 시장이 흔들릴 때는 최고경영자가 현장에 있어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서 "외국에는 필요한 시간을 지정해 증인을 부른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하루종일 시간낭비를 시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렵게 부른 증인들이 앉아만 있는 것을 보다 못한 김영선 정무위원장이 "정무위는 전통적으로 증인 채택과 관련해 논란이 많다"며 "힘들게 채택한 증인들인 만큼 질문도 많이 하고 증인을 중심으로 심도 있게 국감을 진행하자"고 주문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피감기관이었던 금융위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의원들의 허락을 받아 이창용 부위원장과 은행과장 등 주요 간부들은 오전시간 국감장을 떠나 시장상황에 대한 대책회의를 가질 수 있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