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9.1세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치인 78.9세보다 높습니다. 1977년만 해도 OECD보다 수명이 10년 이상 짧았던 것을 되돌아보면 경제성장과 함께 의학도 눈부시게 발전한 셈이죠."

현대의학 도입 120주년,대한의사협회 창립 100주년을 맞아 '2008 세계의사회(WMA) 서울총회'를 유치한 주수호 의협 회장(사진)은 16일 행사장인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의 경우 세계 정상급 수준에 도달했지만 수명이나 암 사망률 등 전 영역에서 OECD 평균 수준을 웃도는 분야는 의료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주 회장은 "열악한 건강보험 체제에서도 의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국이 선진국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에 낄 수 있었다"며 "그 위상을 인정받아 이번 WMA를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서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1947년 설립된 WMA는 전 세계 800만명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제 민간 의사중앙단체.현재 86개국 의사회가 정회원으로 가입해 있으며 의사의 자주성,의료 윤리 및 인권,의료인력 수급 등을 논의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나치와 일본 군인들이 자행한 반인륜적 임상시험을 반성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해 1964년 헬싱키 선언,1975년 도쿄 선언,1984년 제네바 선언 등을 통해 의사의 윤리와 환자의 인권보호를 강화하는 행동지침을 잇따라 마련해왔다. 18일까지 열리는 이번 총회에는 50여개국 400여명의 의사들이 참석해 '의사의 자율성과 임상적 독립성'을 담은 '서울 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

주 회장은 "의료산업의 발달로 임상시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나 의료 윤리 및 관련 제도가 현실적으로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만큼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황우석 박사(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에서 나타난 대로 여성 연구원들은 난자를 제공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이미 헬싱키 선언은 피실험자와 연구주체의 관계가 독립적이지 않거나 강압에 의해 동의한 것이 아닌지를 의사가 살펴야 한다고 규정했다"고 소개했다.

주 회장은 이어 의사협회는 자살 예방,아동 성폭력 금지,금연 확산,주기적인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를 통해 의료 인권 및 사회 문제를 해결코자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의 자율성 확보 문제와 관련,그는 "틀에 박힌 건강보험 제도와 관료들의 지나친 규제 등으로 의사들이 자율적이고 의학적인 판단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든 실정"이라며 "이로 인해 환자들이 애꿎게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국내외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보건 정책 실패를 의사 탓으로 돌리거나 여론이 윤리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의사의 자율성을 훼손함으로써 최선을 다해 진료하려는 대다수 양심적인 의사의 사기를 꺾는 것은 금물"이라고 주장했다.

연세대 의대 출신인 주 회장은 외과전문의로 안세병원 외과 과장,대한외과개원의협의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뒤 지난해 6월 제35대 의협 회장으로 취임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