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유혹' 엘리자베스 하이켄 지음/권복규·정진영 옮김/문학과지성사/487쪽/2만원

기원전 600년 인도의 한 외과의사가 볼의 피부로 코를 재건하는 방법을 문헌으로 남겼다. '신중한 의사라면 환자의 코 크기만 한 나뭇잎을 볼에 대고 정확히 그 크기만큼 잘라낸 뒤 코끝을 절개하여 그 피부를 코끝에 대고 재빨리 봉합한다. '

이 수술은 기원후 1000년에 시술됐다. 그러나 성형수술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그것도 여성이 아니라 남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전쟁터에서 다친 군인들의 안면 재건이 주목적이었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의사학자인 엘리자베스 하이켄은 <<비너스의 유혹>>에서 '성형수술'의 의미를 인문ㆍ역사학적으로 풀어내면서 20세기 미국 사회의 실체까지 폭넓게 조명한다.

저자는 1921년에 미국 성형외과의사협회가 생겼지만 1941년 미국 성형외과학회 설립 이후에야 성형외과가 전문과목으로 인정받게 됐다면서 초기에는 엄숙주의를 고집한 의사들이 미용 수술만 하는 성형외과의사들을 '돌팔이'로 여겼다고 설명한다.

미용 수술이 성형외과에서 '의학'의 한 영역으로 인정받게 된 배경에는 심리학의 공헌이 매우 컸다.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낀 환자가 사회적 성공에 필요한 자기 확신을 갖지 못해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진다는 내용의 '열등 콤플렉스'론이 지렛대였다. 이 이론은 성형수술에 '칼을 사용하는 정신의학'의 지위를 부여했다.

의학의 영역으로 들어온 미용수술은 미국 백인 중산층 중년여성들의 환호 속에 급속히 퍼졌다. 2차 대전 중 성장한 50대 미국 여성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웠고 삶을 즐길 여유도 갖게 됐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었다. 성형수술을 통해 아름다움을 찾고자 한 이들의 욕구는 곧 사회적인 트렌드로 발전했다.

성형수술은 인종문제와도 연결된다. 천문학적인 돈으로 얼굴을 완전히 바꾸려고 했던 흑인 가수 마이클 잭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 연예계에서 흑인이라는 조건이 큰 걸림돌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은 잭슨은 '인종 중립적 외모'를 간절하게 원했다. 이 같은 시각은 1923년 코 수술을 받았던 코미디언 겸 배우 패니 브라이스처럼 코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유대인들과 '찢어진 눈'의 교정을 원했던 아시아인들에게도 적용된다.

책에는 1950년대 초 쌍꺼풀과 코 수술을 받은 한국 여성의 일화가 소개돼 있다. 그녀가 수술을 하게 된 이유는 한국에서 만나 미국으로 함께 온 남편이 언제부턴가 그녀와 같이 있는 것을 창피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미용성형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미의 상품화'와 '사회적 불평등' 문제까지 아우르는 복합렌즈다. 그래서 이 책은 의학과 기술문명,사회적 욕망의 상관관계를 동시에 비추는 문화비평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