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해가 지고/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슬픔의 숨결이 느껴졌다. //가슴 아래로 찢어질 듯한 고통이/나는 발길을 멈추고 담벼락에 기댔다. 죽을 듯이 피로했다. /피의 협만 위 구름에서는 핏방울이 떨어졌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지만 나는 불안에 떨면서 난 가슴 속의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벌벌 떨며 서 있었다. 자연을 꿰뚫고 지나가는 거대하고 기이한 절규를 들었다. '

유령 같은 모습으로 양손을 얼굴에 댄 채 공포에 찬 비명을 지르는 그림 '절규'.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가 대표작 '절규'의 환영적 체험을 글로 남긴 대목입니다. 그는 왜 이토록 불길한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을까요.

미술사가이자 작가인 수 프리도의 뭉크 전기 <<에드바르 뭉크>>(윤세진 옮김,을유문화사 펴냄)에 그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뭉크는 한평생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고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열네 살에는 누나까지 잃었지요. 또 서른두 살이 될 때까지 남동생과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해야 했으니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모티브가 '죽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도 순탄치 않았지요. 유부녀와의 첫사랑에선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그 다음에 만난 다른 연인은 그에게 총을 쏘아 오른손 중지를 날려버렸습니다. 그래서 뭉크는 죽을 때까지 장갑을 낀 채 사람들에게 한 번도 손가락을 내보이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뭉크의 작품 세계에는 '절망과 자살,압생트,마약,광기,허무주의,무정부주의,악마주의를 흔쾌히 끌어 안으면서 자기파괴와 도착적 연애를 시작한' 19세기 말의 '세기 말 분위기'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1년 동안 이어진 '삶의 프리즈'의 사랑 섹션에 속하는 작품이지요.

'목소리'와 '키스''뱀파이어''마돈나''질투'에 이은 섹션의 마지막 작품인데 이를 두고 작가는 "모든 자화상이 얼마간은 영혼의 초상이라고 한다면 '절규'는 가시적인 것들을 최대한 벗겨낸 영혼의 초상'이라면서 '그것은 가시적인 것 이면(裏面)의 이미지요,자신을 응시하는 눈의 뒷면이었다"고 표현합니다.

뭉크의 그림을 소개하는 70여점의 도판을 한 장씩 넘겨가면서 위대하면서도 불행했던 '현대 예술의 거장'을 만나보세요.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