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방안'이 발표된 지난 1일.한 중소기업에 A은행의 전화가 걸려 왔다. 환 헤지용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와 관련,금융감독원에 제기한 민원을 철회하지 않으면 정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자금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중소기업은 환율이 급등해 최근 키코 정산 결제일을 넘기자 B은행으로부터 5일 내에 갚지 않으면 남은 계약기간의 정산금을 일괄 청산,평가손실만큼의 압류에 들어가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은행권의 지원을 당부한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과는 아랑곳없이 은행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중소기업 핍박이 여전하다는 소식이다. 비가 쏟아지는데 우산을 빼앗고 있다는 것.은행들이 생존에 급급한 나머지 오히려 유동성을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올 정도다.

특히 S은행은 키코 피해 중소기업으로부터 '유동성 지원 신청서'를 받으면서 "일체의 민사상,형사상 이의절차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특약사항을 끼워 넣은 것이 드러나 도마 위에 올랐다. 중소기업들이 13개 은행을 상대로 키코 상품의 불공정성에 대한 소송을 추진하자 이를 중단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횡포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

정석현 환 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시중은행이 키코 가입을 권유하면서 '꺾기'를 하고 충분히 위험 고지를 하지 않은 것 등은 마땅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대목으로 중소기업의 유동성 지원책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도 17일 내놓은 성명서에서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이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을 볼모로 비양심적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S은행 관계자는 "어떤 기업이 은행 자금을 빌리면서 또 그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면 유동성을 지원하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은행들도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해명했다.

키코 상품에 가입한 중소업체가 도산할 경우 그 손실은 해당 은행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은행과 기업은 같은 배에 탔다. 하루빨리 공존과 상생의 해법을 찾을 때다.

이정선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