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명동 격인 왕푸징 거리의 대형 쇼핑몰 신둥팡광장.BMW 자동차부터 몽블랑 만년필까지 해외 명품과 리닝 등 중국 대표 브랜드가 집결해 있는 최고급 백화점이다. 지난 16일 저녁 이곳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Sale(할인판매)' 상점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한 벌 사면 30%,두 벌은 40%,세 벌은 50% 할인한다고 써붙인 옷가게도 있었다. 하지만 세일에도 불구,쇼핑객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면 신둥팡광장 밖 의류할인점에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옷 한 벌을 29위안(약 5000원)~39위안(7000원)에 파는 이곳을 찾은 천밍쑹씨(35)는 "왕푸징에 이런 할인매장이 없었는데 새로 생긴 모양"이라며 웃었다.

베이징의 소비 시장에도 미국발 금융위기로 불경기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베이징 톈퉁위안의 자동차 매장 거리.한 자동차 매장의 종업원은 "올림픽이 끝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기대만큼 좋아지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중국의 자동차 판매는 지난 8월 36만8000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7.8% 줄었다. 지난달에는 42만대가 팔렸지만 여전히 7% 정도 감소한 수준이다.

수출기업들이 몰려 있는 광둥성 선전이나 상하이의 상황은 베이징보다 훨씬 심각하다. 중소형 회사에 이어 대형 기업까지 연쇄 파산의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 대량 실직→소비 위축→경영 악화→실직의 악순환 고리가 나타날 조짐이다.

17일만 해도 홍콩증시 상장사인 바이링다가 선전 공장을 폐쇄,15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주말에는 중국 최대 장난감 위탁생산업체인 허쥔그룹이 문을 닫아 6500명이 실직했고,그 전주에는 중국 최대 방직날염업체인 장룽그룹이 부도를 내 3000여명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광둥성 둥관에 진출한 한국 피혁업체인 가나공업의 김창민 사장은 "종업원 100명 안팎의 중소업체 중 파산하는 곳은 세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홍콩도 예외는 아니어서 3위 가전 양판점인 린라디오가 26개 점포를 폐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홍콩 기업 중 4분의 1이 연말까지 문을 닫을지 모른다고 전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