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美 비자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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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9월19일 뉴욕 헤럴드트리뷴지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은 매우 인상적이다. 11명의 대미사절단을 이끈 민영익이 당시 뉴욕에 머물던 아서 대통령을 만나 큰절을 올리는 사진인데,아마도 미국 언론에 실린 최초의 공식적인 조선관리 사진일 게다. 이 사절단은 바로 1년 전 서방국가로는 처음으로 제물포(인천)에서 체결된 '조미(朝美)통상수호조약'에 따라 미국을 방문했었다.
민영익이 그러했지만 조약체결 이후 유길준 등도 미국을 방문하면서 그곳의 문명에 놀라게 된다. 에디슨전기회사를 방문해 전기를 접하고는 '신의 조화'라고 경탄했고,전화기를 들고서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과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서는 개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미국은 항상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이민길에 나섰고,신학문을 익히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소득이 높아지고 해가 갈수록 그 숫자는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그러나 미국으로의 여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비자'라는 관문이 턱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상징적인 진풍경이 미국 대사관의 건물벽을 따라 길게 줄지어 선 인파다. 연간 40여만명이 비자신청과 인터뷰를 위해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새벽부터 나와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 게다가 영사들의 고압적이고 까다로운 심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어쩌다 한번이라도 거부당하면 비자발급받기는 여간 어렵지 않았다. 오죽하면 미국비자를 성공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책까지 나왔을까.
이제 미국땅을 밟기가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미국은 지난 주말 한국을 '비자면제 프로그램(VWP)'의 신규 가입국으로 공식 발표했는데, 관광 및 상용여행 목적으로 90일 이내 체류하는 조건이다. 뒤늦게나마 무비자 입국국가의 반열에 든 셈이다.
혈맹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걸맞지 않은 대우를 받아왔던 우리의 자존심이 통상조약 체결 후 126년 만에 다소나마 회복되는 기분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
민영익이 그러했지만 조약체결 이후 유길준 등도 미국을 방문하면서 그곳의 문명에 놀라게 된다. 에디슨전기회사를 방문해 전기를 접하고는 '신의 조화'라고 경탄했고,전화기를 들고서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과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서는 개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미국은 항상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이민길에 나섰고,신학문을 익히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소득이 높아지고 해가 갈수록 그 숫자는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그러나 미국으로의 여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비자'라는 관문이 턱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상징적인 진풍경이 미국 대사관의 건물벽을 따라 길게 줄지어 선 인파다. 연간 40여만명이 비자신청과 인터뷰를 위해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새벽부터 나와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 게다가 영사들의 고압적이고 까다로운 심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어쩌다 한번이라도 거부당하면 비자발급받기는 여간 어렵지 않았다. 오죽하면 미국비자를 성공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책까지 나왔을까.
이제 미국땅을 밟기가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미국은 지난 주말 한국을 '비자면제 프로그램(VWP)'의 신규 가입국으로 공식 발표했는데, 관광 및 상용여행 목적으로 90일 이내 체류하는 조건이다. 뒤늦게나마 무비자 입국국가의 반열에 든 셈이다.
혈맹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걸맞지 않은 대우를 받아왔던 우리의 자존심이 통상조약 체결 후 126년 만에 다소나마 회복되는 기분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