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부터인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인물처럼 되고 싶은가 물어보면 대중 연예인 스타를 꼽는 일이 부쩍 늘었다.
“탤런트 OOO이요. 인기 짱이잖아요.”
“영화배우 OOO이요. 멋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지난 18일 청주 예술의 전당 문화훈장 수훈식에서도 이런 세태가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문화의 날 기념식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수상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정시인 김영랑을 비롯하여 전란 중에도 전통 문화재를 보호하고 문화경찰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선친 차일혁총경 등 우리나라 문화 위인을 대표하는 25명이 서훈되었다.

그런데 수훈현장에 있던 나는 예상 못한 상황에 잠시 어리둥절해야 했다. 행사장 주변에 수십 명의 취재진들이 서로 좋은 자리를 잡기위해 아우성인가하면, 갑자기 아주머니 부대 수백 명이 식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녀들은 다름 아닌 배우 배용준씨가 화관문화훈장을 받는 장면을 보기위해 일본에서 전세기까지 동원해 날아온 ‘욘사마’ 열성팬들이었던 것. 나중에 알고 보니 청주시내는 전날 숙박업소가 동이 났다고 한다.

배용준이 등장하자 시상식장은 함성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팬들이 어찌나 열정적으로 환화하든지 아이돌 스타들의 공연무대를 넘어 마치 종교단체의 부흥회 현장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 대중예술가가 문화훈장을 타는 일은 좀처럼 드문 일인데, 이번에 한류의 주류로서 배씨가 국위선양을 한 공적이 인정돼 수훈하는 것인데, 현장에서 바로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문화가 오락의 수준을 넘어 국가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문화 영토권’용어를 처음 쓴 나로서는 남들과는 또 다른 감회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수훈자들은 평생의 과업으로서 목숨을 바친 고인과 원로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오늘 행사가 주객전도는 아닌가 우려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시대가 달라졌고 대중문화인의 사회적 사명감을 고취시키는 계기로서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나는 서울에서 예정된 선약 때문에 복잡한 행사장을 빨리 빠져나가려 서둘렀는데 데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차길진법사님이시죠? 팬입니다.”
그는 오늘 행사를 통제하는 경찰관중의 한 명이었다. 취재진과 열성팬들이 뒤엉켜 전쟁 통 같은 상황에서 이름도 얼굴도 처음 보는 경찰관이 건네는 인사는 뜻밖이었다. 그런데 대기 중인 차에 오르려는데 이번에도 한 경찰관이 다가와 나의 팬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게 아닌가. 동행한 지인이 “법사님도 아제 스타시네요.”하는 말에 우리 일행은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위인 만들기에 인색한 나라다. 사회에서 귀감이 될 만한 어른으로 떠받들라치면 안티들이 악성 댓글로 준동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제 감점기와 한국전쟁, 민주화를 거치면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급반전이 역사적 배경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민족성 때문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위인 만들기를 너무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반짝 스타와 위인을 혼동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우리 청소년들이 대중 스타에 열광하는 심리는 화려한 외형과 유명세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사실 알고 보면 대중 스타의 길 만큼 고되고 험한 일도 없다. 심지어 인기에 죽고 사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던가. 인생경험이 적은 청소년들은 인간으로서 삶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외형만 보고는 하루아침에 달콤한 열매를 딸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꽃과 열매는 동시에 얻을 수 없다. 화려한 꽃을 버리고 시련을 견딘 열매를 선책한 자가 위인이다. 위인을 만드는 일은 위인처럼 시련 속에서 자기 정신과 영혼을 빛내는 길잡이를 만드는 일이다. 대중 스타를 비롯해 누구든 위인이 될 수 있다. 다만, 화려한 외형과 인기에 대리만족하는 팬으로 남을 것인가, 스스로 영혼이 빛나는 위인으로 거듭날 것인가하는 선택은 순전히 자기 몫이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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