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서도 템플턴 회장은 연중 열흘 이상은 반드시 대학을 방문한다. MIT 하버드대 캘리포니아공대 남가주대(USC) 스탠퍼드대 등 미국의 손꼽히는 명문대학이 주된 방문대상이다. 뿐만 아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상하이자오퉁(상해교통)대와 인도과학대(IISc) 등 다른 나라 대학도 직접 찾아간다. 이유는 한 가지다. 우수한 인재를 직접 발굴하기 위해서다.
템플턴 회장이 방문하고 나면 해당 대학에는 한동안 'TI 바람'이 분다. TI의 인사ㆍ보상 담당자인 벤 클레넌 이사는 "템플턴 회장은 방문하는 대학마다 하루를 온전히 그곳에서 보내는 것으로 학생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템플턴 회장이 직접 TI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수들에게 TI와 협력해 공동 커리큘럼을 만들도록 설득하거나,필요할 경우 TI의 장비와 실험실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덧붙였다.
이는 자연스럽게 대학생들이 TI 인턴십에 지원하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클레넌 이사는 "우리는 다른 기업들이 인턴십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전부터 수십년째 인턴제를 하고 있다"며 "연간 250~300명가량이 TI의 인턴으로 지원해 3개월가량 교육을 받고 실무를 접한다"고 설명했다. TI 인턴십 제도의 성공은 수치로 증명된다. 일반 기업들은 인턴 중 30~40%만 정규직원으로 확보해도 '성공'이라고 판단한다. 이에 비해 TI는 인턴의 85~90%를 정규 직원으로 채용한다.
인재 확보는 이제 기업들에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의 전쟁이 되고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탄탄한 조직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면 핵심 인재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템플턴 회장이 직접 인재 리크루팅에 나서는 것도 능력과 열정을 겸비한 핵심 인재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생존전략에 다름 아니다. 템플턴 회장은 작년 전미흑인엔지니어회의(NSBE)에서 6000여명의 흑인 엔지니어들에게 "TI는 언제나 열려 있으며 여러분들이 우리 회사에 많이 지원하기를 바란다"고 수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인턴십을 통해 인재를 확보하기는 세계최대의 생활용품업체인 P&G도 뒤지지 않는다. P&G는 인턴에게도 정규 직원과 똑같은 월급을 주면서 프로젝트를 맡긴다. 보통 2개월 남짓인 인턴기간에도 실무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자연스럽게 인턴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갖게 된다.
P&G는 인턴십을 마친 나라에 관계없이 인턴중에서 필요한 인재를 골라쓴다. 예컨대 홍콩에서 인턴십을 했더라도 미국에서 채용될 수 있다. 인턴 때 부여된 책임과 권한은 신입사원이 되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입사원에게도 중요한 업무를 맡기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게하는 '조기책임제'가 바로 그것이다. 인턴과 신입사원을 거치면서 직원들의 역량은 실제 비즈니스에 곧바로 활용된다.
기업들의 인재확보 노력은 갈수록 글로벌화하고 있다. 특정 지역에서 뽑기보다는 여러 국가에서 충원해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영국의 항공기 엔진 전문업체인 롤스로이스의 그레이엄 슈마허 교육담당 총괄책임자는 "롤스로이스는 50여개국에서 인재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인재충원을 위해 형성한 세계 주요 대학과의 네트워크는 그대로 연구개발의 네트워크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전략도 더욱 다변화되고 있다. 호주 대표기업인 맥쿼리금융그룹은 인재를 추천하는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따로 준다. 모든 임원들에게는 훌륭한 인재를 채용해야 한다는 의무가 주어진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300여 명으로 구성된 '캔디디트 제너레이터(Candidate Generator)'를 운영한다. 다름아닌 '인재발굴단'이다. 이들은 하루 종일 숨어 있는 인재 찾기에만 전념한다. 전시회 세미나 연구실 취업설명회까지 인재가 있을 만한 곳이라면 국경을 넘어 어디든 찾아간다. 중국 칭화대 출신으로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시애틀 외곽 레드먼드시 근처에 중국식 기와집을 짓고 샌프란시스코 차이나 타운에서 음식을 공수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스티브 발머 MS사장은 "내 업무의 70%는 인재를 찾는 것"이라고 틈만 나면 강조할 정도다.
인터넷의 간판인 구글도 마찬가지다. 채용담당 직원 1명당 직원 숫자는 14명 수준이다. 직원 100명당 1명의 채용담당 직원을 두고 있는 다른 기업에 비해 그만큼 인재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는 증거다.
글로벌 위기가 진행되는 상황이다보니 기업들의 인재채용 규모도 줄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구글의 경우 지난 3분기 채용인원이 519명으로 작년동기의 2130명보다 훨씬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기업들은 이번 위기를 활용해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힘을 쏟아붓고 있다. 이럴 때수록 진정한 창조적 인재를 골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렇게 보면 핵심인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지났을 때 기업경쟁력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정태웅/이상은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