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편 거느린 그녀 … 발칙한 손예진
"처음에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결혼 생활'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관객들의 거부감을 우려했어요. '이건 사랑이 아니다'란 반응이 나올까도 걱정했고요. 그런데 시사회를 본 관객들 사이에 사랑과 결혼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는 것을 지켜보니 기대가 큽니다. 애초부터 이 영화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게 아니라 뒤집어 생각하면 이럴 수도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대화와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는 게 목표였거든요. "

박현욱씨의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멜로영화 '아내가 결혼했다'(18세 이상)의 타이틀롤 주인아역을 맡은 손예진(26)은 23일 개봉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결혼한 아내가 남편의 동의를 얻어 또 한번 결혼한다는 파격적인 내용.한 여자와 두 남자의 '동시 사랑'이라는 소재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프랑스 영화 '줄과 짐'(1961년),독일 영화 '글루미 선데이'(2003년) 등은 기존 가치의 질서가 무너진 2차 대전이 배경이었고 결혼 제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이 작품이 등장한 것은 가정에서 여성의 발언권이 강화된 세태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페미니즘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억압된 여성의 해방을 부르짖는 페미니즘은 근본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지닌 부부의 일부일처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구촌에서 여전히 용인되고 있는 일부다처주의의 남성적 욕망을 여성으로 대체한 전복적 시선이라고나 할까.

"우리 할아버지 시절에는 두 아내를 거느린 경우가 많았어요. 그것을 현대의 한 아내와 두 남편으로 옮겨온,시대를 반발짝 앞서간 파격적인 소재지요. 남성들은 불편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통쾌하고 신선하게 받아들여요. "

남편 덕훈(김주혁)의 시점으로 시종 비쳐지는 주인아는 발칙한 행동을 하지만 헤어지기에는 너무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자신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남편을 지배하려 들거나 양다리를 걸치려는 여자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남편의 동의를 구한다. 극중 대사는 그녀의 사랑과 결혼관을 잘 드러낸다.

"사랑은 서로의 도드라진 면만 보는 거지만 결혼은 서로의 삶이 포개지는 느낌이야" "(두 남자와의 결혼은) 사랑을 둘로 나누는 게 아니라 두 배로 만드는 거야" "나,자기 사랑하지만 자기 것은 아니야"….

"'당신만을 사랑할 수는 없다'고 말하거나 보호막과 방어벽을 스스로 깰 수 있는 인아의 면모가 부러워요. 실제 저는 인아처럼 솔직하게 살지 못하거든요. 내 행복에만 집중하지도 못하고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요.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결혼하는 것도 부정적이에요. 다른 사람을 만나 참고 희생하는 게 지금은 쉽지 않아요. "

손예진은 지난 10년간 매년 1편씩 멜로영화에 출연해왔다. 개인적으로 '운명적인 사랑'에 목말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초기작들에선 순수한 영혼을 지닌 '눈물의 여왕'으로 팬들에게 각인됐지만 '작업의 정석'에서 바람둥이역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으며 이번 작품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요? 스펙트럼을 넓히는 배역이라면 뭐든지 도전할 거예요. 잘 할 수 있는 역할만 고르는 게 아니라 제 안의 다른 면모를 1%라도 끌어낼 수 있다면 말이죠."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