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내년도 경영계획 윤곽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확산으로 한때 패닉상태에 빠졌던 기업들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면서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계획을 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라는 볼멘소리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물론 '숫자'로서의 사업계획에는 크게 무게를 둘 수 없는 분위기다. 하지만 난국을 타개하고 돌파할 수 있는 전략 선택과 진용 구축은 어느 정도 가시화되고 있는 단계다.

주요 기업들의 내년도 경영방침은 △불확실성 △아웃소싱 △재고 축소 △인수·합병(M&A) △신시장 등 5개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위기상황 전제로 움직여라

# 기업들은 내년 경영여건이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선선히 받아들이고 있다. 위기상황을 전제로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자세다.

구본무 LG 회장은 최근 그룹 임원 세미나에서 "금융시장 혼란으로 인한 경기 침체와 소비 둔화가 단기간 내에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며 "환율과 금리 변화에 따른 리스크에 보다 철저하게 대비해달라"고 당부했다. GS칼텍스는 이른바 '시나리오 경영'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거시경제 지표를 △최악 △적정 △최선 등의 세 가지로 정해놓고 최악의 경우에도 수익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아웃소싱으로 원가절감하라

# 불황기에 원가 절감을 모색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편이 글로벌 아웃소싱이다. 환율과 유가동향이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신규 투자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물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TV 부문에서 외주생산을 꺼려왔던 삼성전자는 최근 비용절감을 위해 세계 1위 TV 아웃소싱업체인 TPV를 비롯해 퀴스다 타퉁 등에 LCD TV 생산을 맡기고 있다. 지난 20일 기업설명회를 가진 LG전자의 정도현 부사장도 "아웃소싱을 확대하기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며 "특히 저가용 휴대폰 생산에 아웃소싱을 많이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감산하더라도 재고 줄여라

# 전자 자동차 철강 등의 분야에서 3분기보다 4분기 실적이 더 나쁠 것이라는 예측이 많은 이유는 재고부담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심화와 '크리스마스 특수(特需)' 실종으로 일부 기업들의 창고가 미어터진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자동차 LG디스플레이 하이닉스반도체 SK에너지 등은 이미 감산에 돌입한 가운데 중·장기 투자계획을 재점검하고 있다. 재계는 선진국 수출시장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증설투자는 당분간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해외업체 M&A 나서라

# 내년에 가장 각광받게 될 전략이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며 "M&A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포스코의 이동희 부사장은 "내년에는 철강가격 하락 등으로 일부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매물이 많이 나올 것"이라며 "요즘 해외 철강사들의 주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아예 계열사별로 별도의 M&A 전략을 수립하기로 의견을 모은 상태다.

신흥시장에 집중하라

# 선진국들의 경기침체에 대비해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신흥시장 공략을 가속화한다는 방침이다. 최지성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은 내년도 휴대폰 판매목표를 올해보다 25% 이상 늘리면서 "러시아 인도 브라질 중동시장 등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최근 해외 생산 및 법인장 회의를 열고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러시아와 동유럽 등에 화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도요타 소니 파나소닉 등도 동일한 전략을 수립해놓고 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