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펀드 투자자금이 일시에 대량 인출되는 '펀드 런'이 발생할 경우 한국은행에 긴급 유동성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최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한은에 은행채 매입을 요청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의 고위관계자는 22일 "대규모 펀드환매가 일어날 경우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이 증시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량 환매로 시장이 패닉상태에 빠지면 자산운용사가 펀드자산을 제대로 팔지 못해 사태가 악화일로를 걸을 수 있다"며 "이때는 한은의 유동성을 지원받은 은행이 펀드자산을 담보로 잡고 자산운용사에 자금을 빌려주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은행 증권 등 펀드판매사들이 공동으로 크레디트라인(신용공여 한도)을 설정해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일정시간이 지난 뒤 판매사가 매수가보다 높은 적정한 가격에 되팔 수 있다는 조건으로 펀드에서 보유 중인 주식이나 채권을 사주는 방식과 판매사가 펀드의 보유주식을 담보로 펀드자산의 20% 내에서 차입한 채권을 사주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비상조치를 가동하기 전에 1단계로 각 자산운용사가 자체적으로 자금 차입을 추진하고 환매를 연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행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상 자산운용사는 대량 환매 청구가 들어올 경우 펀드자산 총액의 10% 내에서 차입이 가능하다.

정부가 이 같은 비상대책을 수립한 이유는 올 들어 국내외 증시 급락으로 펀드손실이 커지면서 대량 환매 사태인 이른바 '펀드런'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지만 정부는 현실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매달 일정액이 빠져나가는 적립식 형태의 펀드가 많은 데다 투자자들의 인식도 높아져 아직 펀드에서 대량 환매가 일어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며 "펀드런 상황이 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의 유동성 위기설에 대해서도 "거의 대부분 회사가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위험이 과장돼 전파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