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공연 앞둔 최태지 국립발레단장

지난해 가을 국립발레단 공연 현장.당시 정동극장장이던 최태지씨(49)는 조연들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봤다. 수석 무용수의 동작에 집중해야 할 단원들의 시선이 주역들에게 가 있지 않았던 것.1996년부터 2001년까지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지낸 최씨는 그 때 국립발레단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연들이 소외받고 있다는 느낌에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월4일자로 국립발레단장으로 복귀했다.

서울 예술의전당의 국립발레단 사무실에서 23일 최 단장을 만났다. 그는 오는 28일 대구오페라하우스를 시작으로 충무아트홀(11월1~2일),구로아트밸리(11월7~8일)에서 공연할 국립발레단의 '지젤' 준비로 살이 3㎏나 빠진 모습이었다.

'지젤'은 발레리나들의 군무로도 유명하다. 조연들의 역할이 주역 무용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최 단장이 그동안 단원들을 잘 추스려온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최 단장은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내년부터는 단원들의 토슈즈를 국립발레단에서 지원해주고 상근 마사지사도 두기로 했다. 5만원에 불과한 공연 수당도 20만원으로 늘렸다. 문화체육관광부를 수시로 드나들며 어렵사리 얻어낸 결과다.

2001년까지 국립발레단장으로 일할 때 김지영 김주원 등 몇몇 단원 중심의 스타마케팅에 주력했던 그가 조연들에게 신경쓰기 시작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이전에도 주역 무용수 이외의 단원들에게 관심을 놓지 않았다"고 답했다.

"당시 조연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연습실 뒷정리는 주원이와 지영이에게만 시켰어요. 내가 생각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하게 대했지요. 실력 있는 단원들이 주변의 미움과 시샘을 받으면 안 되니까요. "

최 단장의 이력을 보면 더욱 이해가 간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그는 9세 때 발레를 시작해 일본에서 프리마발레리나로 활동하다 1987년 국립발레단 주역으로 스카우트돼 한국에 왔다. 바닥이 좁은 발레계에 갑자기 등장한 것도 못마땅한 데다 일본에서 온 사람이 주역무용수가 됐다는 것 때문에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단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자 공연하는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그 때 단원 간의 단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어요. 무용수가 즐겁지 않은 공연을 보면서 관객들이 감동을 받을 수 있겠어요?"

최 단장은 올해 초 취임 간담회 때 '명품화''대중화''세계화' 등의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전국을 돌면서 국립발레단 공연을 펼치고 있고 내년에 새로운 명작 3편을 공연할 계획이어서 대중화와 명품화 단계는 차근차근 밟고 있다.

그는 "'세계화'를 위해 대형 창작발레 공연을 준비 중인데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며 "내년 국립발레단의 비장의 무기"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