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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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혼돈의 시대다. 금융위기가 이념적 논쟁으로까지 비화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던 미국이 '사회주의 미국'으로 급변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그렇다.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밀턴 프리드먼을 대부로 하는 이른바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이 국유화 등 정부조치들을 비판하고 나선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에서 자본주의냐,사회주의냐 하는 논쟁은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20세기 대공황 당시 뉴딜(New Deal) 정책은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와의 새로운 거래(계약)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를 벤치마킹해 왔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냉전이 붕괴되면서 경쟁상대가 없어졌다는 그 자체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걱정하고,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슈퍼 캐피털리즘(Super Capitalism)'에 불안감을 느끼는 경제학자들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경제학계도 요동을 치고 있다. 프리드먼은 매도당하고 있고,케인스는 무덤을 박차고 나왔다. 그린스펀은 비난의 표적이고,이에 앞장섰던 폴 크루그먼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과 처방을 정부의 개입이냐 아니냐,규제냐 아니냐의 그런 차원의 문제로만 봐야 하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만약 이것이 자본주의의 위기라면 주목받아야 할 경제학자는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바로 슘페터다. 그는 자본주의가 동력을 상실하면 사회주의로 넘어갈 것이라고 봤다. 이 예언은 지금까지 그의 오류라고 생각돼 왔다(좀 더 두고 볼 일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자본주의의 동력을 망각하지 말 것을 강조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슘페터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에서 자본주의 동력을 설명한 몇 가지만 발췌하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엔진을 가동하면 그 운동을 계속시키는 기본적 충격은 기업이 창조하는 새로운 소비재,새로운 생산방법,새로운 수송방법,새로운 시장,새로운 산업조직에서 나온다","기술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기업가의 영웅적 노력의 결과다","기술혁신에 필요한 새로운 자금은 통상적 경제활동에선 나올 수 없다. 결국 은행의 신용에 의해 창출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혁신의 동반자로서 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 은행은 어떤 기업이 혁신에 성공할 수 있을지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하며 그 결과 기업가 이윤의 일부를 이자로 수취할 수 있게 된다" 등등.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오늘의 이 위기는 과연 금융의 위기로만 봐야 하는 것인가. 만약 자본주의의 성장엔진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해 오늘의 금융위기가 나타났다고 한다면,그 진단이나 처방을 둘러싼 논쟁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만 할 것이다.
국가마다 금융안정책이다,경기부양책이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이 위기를 잠시 넘긴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진화하기를 원한다면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새로운 혁신적 충격은 가능할 것인가,이를 선도할 기업가들이 대거 출현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기업가들에게 돈이 흘러들어갈 수 있는 금융시스템인가. 위기 이후 자본주의 경제를 누가 주도하느냐는 결국 이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미국에서 자본주의냐,사회주의냐 하는 논쟁은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20세기 대공황 당시 뉴딜(New Deal) 정책은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와의 새로운 거래(계약)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를 벤치마킹해 왔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냉전이 붕괴되면서 경쟁상대가 없어졌다는 그 자체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걱정하고,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슈퍼 캐피털리즘(Super Capitalism)'에 불안감을 느끼는 경제학자들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경제학계도 요동을 치고 있다. 프리드먼은 매도당하고 있고,케인스는 무덤을 박차고 나왔다. 그린스펀은 비난의 표적이고,이에 앞장섰던 폴 크루그먼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과 처방을 정부의 개입이냐 아니냐,규제냐 아니냐의 그런 차원의 문제로만 봐야 하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만약 이것이 자본주의의 위기라면 주목받아야 할 경제학자는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바로 슘페터다. 그는 자본주의가 동력을 상실하면 사회주의로 넘어갈 것이라고 봤다. 이 예언은 지금까지 그의 오류라고 생각돼 왔다(좀 더 두고 볼 일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자본주의의 동력을 망각하지 말 것을 강조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슘페터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에서 자본주의 동력을 설명한 몇 가지만 발췌하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엔진을 가동하면 그 운동을 계속시키는 기본적 충격은 기업이 창조하는 새로운 소비재,새로운 생산방법,새로운 수송방법,새로운 시장,새로운 산업조직에서 나온다","기술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기업가의 영웅적 노력의 결과다","기술혁신에 필요한 새로운 자금은 통상적 경제활동에선 나올 수 없다. 결국 은행의 신용에 의해 창출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혁신의 동반자로서 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 은행은 어떤 기업이 혁신에 성공할 수 있을지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하며 그 결과 기업가 이윤의 일부를 이자로 수취할 수 있게 된다" 등등.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오늘의 이 위기는 과연 금융의 위기로만 봐야 하는 것인가. 만약 자본주의의 성장엔진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해 오늘의 금융위기가 나타났다고 한다면,그 진단이나 처방을 둘러싼 논쟁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만 할 것이다.
국가마다 금융안정책이다,경기부양책이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이 위기를 잠시 넘긴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진화하기를 원한다면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새로운 혁신적 충격은 가능할 것인가,이를 선도할 기업가들이 대거 출현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기업가들에게 돈이 흘러들어갈 수 있는 금융시스템인가. 위기 이후 자본주의 경제를 누가 주도하느냐는 결국 이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