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칸트는 세상에서 가장 신기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이고,또 하나는 마음속의 양심이라고 했다. 양심이라는 것은 마음속의 조용한 속삭임이어서 자기 혼자만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음의 최후 보루라고 하는 양심은 부패의 방부제 구실을 한다. 그렇기에 훈훈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이웃간에 도타운 정이 오가는 것이다. 정의가 살아 숨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양심이 있어서다.

그런데 말처럼 양심적인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자기 혼자 편하자고 남을 이용하고,제 몫이 아닌 줄 알면서도 공짜로 받으려 하고,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덤비고 고고한 척하면서 촌지를 챙기는 모습에서 부패냄새가 배어 나온다. 뿐만 아니라 부적절한 발언으로 남의 속을 후벼 놓는가 하면,공공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이용하려 든다.

생선이 부패한 것은 그 썩은 냄새로 알 수 있듯,사람의 부패는 그 마음가짐에서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부패한 심성의 한가운데에서는 언제나 빠른 계산과 속임수가 판을 친다. 조용하고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양심과는 전혀 딴판이다.

양심이 너무도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한국투명성기구가 최근 전국 중·고교생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년 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설문조사를 보면 충격적이다. 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가 10점 만점 기준으로 6.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정직과 부자의 중요성을 묻는 질문에 46%만 '정직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청소년 18%는 '10억원을 번다면 10년 감옥을 가도 좋다'고 응답할 정도였다. 내가 잘 살 수만 있다면,부정부패도 괜찮고 뇌물이 필요하다는 응답자도 20%나 됐다. 자기조절능력이 상실되고 있는 실상을 그대로 보는 것 같다.

장래 나라의 주역이 되어야 할 청소년들의 부패불감증은 어른들에게도 책임이 크다. '자녀에게 황금 대신 양심이라는 훌륭한 유산을 남겨야 한다'고 말한 플라톤의 경구를 깊게 새겨야겠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