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의도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양치기 소년이 됐다. 코스피지수가 이들이 저점이라고 제시했던 모든 지수대를 깨고 1000선마저 위협하는 수준까지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주가가 급락한 23일 한 증권사의 시황담당 애널리스트(시니어)의 첫마디는 "한마디로 부끄럽다"는 반응이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할 준비도 하지 못했고,투자자들에게 어떤 경고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고백이다.

그는 또 "주식시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주식이 과연 장기 투자수단으로 적정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라고도 했다. 그동안 주식에 대한 장기투자 수익률이 다른 자산에 대한 투자수익률보다 높았다고 주장해온 그였다. 하지만 이 말이 과연 투자자들에게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얘기다.

주식시장에 대한 회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애널리스트는 "현재 주가는 일시적일지도 모르지만 1980년대 후반 지수 500에서 1000을 오가던 박스권 상단으로 회귀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20년간 무엇이 변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고 했다. 시장은 펀더멘털(내재가치)을 뒤로한 채 주가를 20년 전 수준으로 되돌려 놓은 데 대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주가 하락의 속도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세계 금융시장 불안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한국시장에 영향을 미칠지 예상하지 못했다"고까지 털어놨다. 향후 주식시장 전망에 대해 그는 "저점을 논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한국시장의 가치를 평가하고 현재 시장가치와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말할 수밖에 없는 게 애널리스트의 숙명"이라며 말을 맺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