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ㆍ한은 자금지원 엇박자 … 국회는 경제팀 경질 요구만

세계 금융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주식,채권,외환시장이 폭풍 전야의 위기감에 휩싸여 있지만 정작 국가의 위기 대응 능력은 취약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사불란한 체제를 갖춰도 모자랄 판에 허술한 위기의식과 정략적 이해 관계,기관 이기주의에 휘둘려 글로벌 위기에 '국내용 대책'조차 제때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 대응의 사령탑인 정부와 한국은행은 연일 다른 목소리로 시장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유동성 공급,은행채 직매입 여부를 놓고 공개적으로 다른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정부와 한은의 상황 인식이 다르다는 데서 비롯된 일이라지만 국가 시스템으로는 이를 거중 조정할 수단과 방법이 전혀 없다는 사실만 대내외에 공표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은 '정치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에서조차 헨리 폴슨 재무장관을 경질하라는 주장은 없다. 반면 우리 정치권은 경제팀 몰아내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시가 급한 '은행 대외채무에 대한 국가보증 동의안'을 경제팀 경질과 맞바꾸자고 몽니를 부리기까지 한다.

정부 역시 신속성과 충분성의 원칙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키코(KIKO) 대책,건설업계 지원 방안 등은 대표적인 실기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외화·원화 유동성 지원 대책도 선제적이거나 충분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세계 경제 위기를 단순한 금융위기로 보거나 단기간 내에 해결될 것이라고 하는 '낙관적 전망'도 문제다. 금융위기는 전 세계 동시 불황의 서곡이고 짧게는 2~3년,길게는 10년 가까이 경기 침체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한 적극적 재정·통화정책에 나서고 금융회사와 기업들은 뼈를 깎는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엇보다 경상수지를 흑자로 돌려세워야 외화 유동성 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다"며 "감세 정책을 유지하면서 재정지출 확대 등 경기 부양을 위한 대책을 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어떤 재정정책이든 지금 당장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짜서 빨리 추진해야 한다"며 "한국판 뉴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인식/이태명/차기현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