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쇼크 이후…격량의 40일] 펀드서 돈 빼고…안전자산으로 '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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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주저앉자 정기예금 눈 돌려, 이달 들어서만 10조 뭉칫돈 몰려
저축銀 계좌도 한달새 10% 급증, 홀대받던 정기적금도 다시 각광
1년 전 이 맘 때 정기예금에 돈을 넣어두면 바보 취급을 받았다. '코스피 2000 시대'였기에 너도 나도 할 것없이 예적금을 깨고 펀드로 갈아탔다. 그러나 1년 뒤인 2008년 10월.코스피는 반토막이 났고 환율은 50% 이상 뛰었다. 이제 "주식이나 펀드라면 이가 갈린다"는 투자자가 늘어 시중자금은 다시 은행 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달 15일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신청이 이러한 '머니 리턴'의 기름을 부었다. 재테크 시장이 금가는 신호탄이 됐다는 분석이다.
◆정기예금 13조원 증가
'9·15 리먼 쇼크' 이후 주가와 환율은 역전됐다. 1400대였던 코스피지수는 한 달 만에 900을 바라보고 있고 9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로 치솟았다.
주가가 내려앉자 투자자들은 안전한 정기예금 쪽으로 눈을 돌렸다. '주식 펀드도 다 싫고 예금이 최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은행채나 양도성예금증서(CD)로 조달이 여의치 않던 은행들도 예금으로 자금을 수혈받기 위해 예금금리를 연 7% 중후반대까지 올렸다.
국민·우리·신한·하나·외환은행과 농협중앙회 등 6개 주요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달 15일 319조4190억원에서 지난 22일 현재 332조2738억원으로 12조8548억원이 증가했다. 특히 이달 들어 10조원 이상의 뭉칫돈이 정기예금으로 유입되는 등 시간이 갈수록 예금 선호 심리는 뚜렷해지고 있다.
저축은행들도 연 8%가 넘는 정기예금을 쏟아내면서 시중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평소보다 3배가 넘는 돈이 매일매일 저축은행 예금으로 들어오고 계좌 수도 한 달여 만에 10% 이상 증가했다. 솔로몬저축은행 관계자는 "증시를 빠져 나온 돈이 은행과 저축은행권으로 밀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MMDA에 10조원 유입
적립식펀드에 밀려 홀대받았던 정기적금도 인기를 끌면서 한 달여 만에 4398억원이 늘었다. 이 기간 중 발행된 은행 후순위채와 카드채에도 수천억원의 투자자금이 밀려들었다. 실제 지난달 국민은행의 후순위채는 3일 만에 창구에서만 4271억원어치가 팔렸으며 농협 후순위채에도 이틀 만에 2500억원이 몰렸다. 예금금리가 치솟기 전인 지난달 말에는 특정금전신탁에도 돈이 몰렸다. 당시 하나은행이 판매한 '빅팟 ABCP' 금전신탁은 1개월 만기에 연 6.1%,3개월 만기에 연 6.3%의 이자를 줬으며 우리은행의 ABCP형 특정금전신탁도 3개월 만기에 연 6.5%의 수익률을 제공했다.
이와 함께 '현금만한 게 없다'는 심리도 확산되면서 언제든 빼쓸 수 있는 수시입출식예금(MMDA) 잔액도 리먼사태 이후 10조원 이상 증가했다.
안선종 하나은행 PB영업부 팀장은 "개인이나 기업 모두 투자기회를 보거나 만약의 위기에 대비해 현금성 자산을 모으고 있어 자금의 단기 부동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펀드는 1조원 이상 빠져
은행 상품이라고 모두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금과 함께 꾸준히 세를 불려온 양도성예금증서(CD)는 최근 들어 주춤하고 있다. 예금보험료를 내지 않아 만기가 같은 정기예금 금리보다 0.1~0.2%포인트 높지만 예금자 보호가 되지 않은 탓인지 1개월여 만에 1조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CD금리가 연 6% 이상으로 급등해 CD발행이 쉽지 않은 데다 예금금리가 치솟아 CD만기가 돌아오면 고객들이 정기예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펀드에서도 돈이 빠져나오고 있다.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22일까지 국내외 주식형 펀드에서는 1조385억원이 순유출됐다. 상장지수펀드(ETF)를 포함하면 1조2323억원이 사라졌다. 폭락장이 이어지면서 전체 펀드의 순자산 총액도 한 달여 만에 33조원이 날아가버렸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증시가 떨어질 만큼 떨어진 데다 장기 적립식 펀드에 대한 세제지원이 생겨나 현 추세보다 '펀드 런'이 급격히 늘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