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힘이다!] 상상할 수 없다면, 창조는 남의 것일뿐‥인문학에서 배우는 독창성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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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을 맞이는 유난히 늦다. 이른 추석을 보내며 진작 가을인 줄 알았더니,이제서야 가을 맛의 단풍과 온도가 느껴진다. 늦게 찾아온 가을,바로 지금이 천고마비의 계절이자 수확의 계절,독서의 계절이다. 이렇게 가을은 '풍요로움'으로 다가온다. 늦가을이 휙 지나가버리기 전에 책과 함께 생각의 '풍요로움'을 즐겨보자.
공자께서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知之者不如好之者,好之者不如樂之者: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
깊어가는 독서의 계절 가을은 이 글을 이렇게 바꾼다. '책을 읽어 아는 것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역시 책을 즐기는 것이 즐거움이다. '
책이 주는 즐거움은 깊은 '사색'과 그것이 가져오는 '창조'이기도 하다. 그럼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지는' 사색(思索)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생각의 탄생》(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방종성 옮김,에코의서재,2007)은 그 답으로 13가지 생각의 도구를 제시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시작점은 관찰이다.
관찰은 수동적으로 보는 행위와 다르다. 예리한 관찰자들은 모든 종류의 감각정보를 활용하며,모든 지식은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생각해보면 역사 속의 위대한 통찰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sublimity of the mundane)'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능력에 달려 있었다.
아는가? 일미진중함시방,일체진중역여시(一微塵中含十方,一切塵中亦如是).하나하나의 티끌 속에도 모든 시방세계우주가 담겨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낙엽의 빛깔이,허공을 가르는 떨어짐이 내 주변의 장엄함이다. 가을을 즐기며 사색에 잠김은 어떤가? 그 눈은 저 하늘의 가을 달로 향한다.
'초승달이 낫 같아/ 산마루의 나무를 베는데/ 땅 위에 넘어져도 소리나지 않고/ 곁가지가 길 위에 가로 걸리네.'
《옛시 읽는 CEO》(고두현 지음,21세기북스,2008)에서 만난 곽말약의 <초승달>이라는 시다. 중국에만 달이 있으랴.개성에도 달이 떴다. 황진이의 <반달(詠半月)>이다.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었나/ 견우가 떠나간 뒤/ 수심 겨워 저 하늘에 던져버린 것.'
관찰은 상상으로 이어진다. 곽말약은 초승달을 낫에 비유했고,황진이는 반달을 머리빗에 비유했다. 둘은 달을 관찰하면서 상상을 한다. 달은 이제 낫이나 머리빗이라는 상징물을 넘어 시공간을 초월한다. 아름다운 옥이 많이 나는 곤륜산을 끌어오더니 그것으로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고,견우와 헤어지고 난 뒤 상심해서 허허로운 하늘에 던져버린 것이 반달이라니 이처럼 상상력의 경계란 끝이 없다.
상상은 창조로 이어진다. "상상할 수 없다면 창조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창조는 독창성에서 나온다. 장미를 처음 미녀에 비유한 사람은 천재지만,두 번째 그와 똑같은 말을 한 사람은 바보라고 했다. 독창성은 기상천외의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니면 남들이 못하는 것을 실현하는 것,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자기만의 기술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독창성을 가질 수 있는가? 《젊음의 탄생》(이어령 지음,생각의나무,2008)에서 한국의 창조 지성 이어령 교수는 창조를 위한 9개의 카드를 제시한다. 그 중 독창성(only one) 카드에서 우리는 3C와 3T의 조건을 찾아낸다. 3C는 '호기심(Curiosity)에서 출발하여 어려운 문제에 도전할 것(Challenge),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계속(Continuation)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만 있다면 평범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독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T는 재능(Talent),기술(Technology),관용(Tolerance)을 통한 창조계층(Creative class)으로의 발전을 독려한다. 이렇게 3C와 3T가 독창성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이어령 교수는 마지막의 관용(Tolerance)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나와 다른 엉뚱한 사람을 포용하여 받아주는 관대함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키우는 온상이라는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의 사색이 나에게 모든 것을 품게 하는 관용의 힘을 주기를,차가운 가을 하늘에 온화하게 뜬 가을 달빛이 나에게 상상의 힘을 주기를.'사색'과 '상상'과 '창조',그것이 늦가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다 주기를.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소 대표 sirh@centerwor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