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정주 < 강남구청장. imjmaeng@naver.com>

거리의 이정표,주소체계 하나하나가 도시의 심벌이고,의사소통의 매개체이다. 주소나 지도체계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니다. 현행의 복잡하고 어려운 우리 주소체계는 의도하지 않게 길을 방황하게 만들고,소통을 단절시킨다.

지번 중심의 과거 서울 주소는 우편집배원이 아니면 알아볼 수 없는 난수표와도 같다. 이러한 토지 지번 중심의 무질서한 주소체계를 정비,길을 따라 번지수를 붙인 새 주소는 진일보했다. 하지만 조그만 지선 길에까지 각각 고유의 이름을 붙여 일일이 지도의 색인을 찾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게다가 각 지역별로는 이름이 중복되는 길도 다수 있다. 오죽하면 택시기사도 찾기 어렵다고 하겠는가.

강남구가 11월부터 새 주소체계를 마련하기로 한 것은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행안부가 만든 주소처럼 '로'(路) 다음에 작은 길은 '길'을 쓰게 한 것은 같다. 하지만 길에 '진달래길' 등 각각의 고유 명칭을 붙이기보다 테헤란로 북 3길 등의 식으로 일련번호와 동서남북 방위를 붙여,간선도로만 알면 목적지를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점이 다르다.

예컨대 행안부 새 주소체계에선 954개의 도로명이 있어서 지도 색인을 갖고 일일이 찾아야 한다. 반면에 강남구 선진화 주소체계를 이용할 경우 20개의 간선도로만 알면 찾아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지도없이 찾아갈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편리성을 넘어 화재,구급차 출동 국가 재난 방지,대처 등에도 긴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또 도시의 미관 향상에 도움이 된다. 한국의 간판이 크고 현란해 '간판오염'이란 오명을 듣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처럼 간판들이 '규모'의 경쟁을 벌이게 된 것은 주소만 갖고는 상점을 찾아오기 힘들게 돼 있는 서울의 복잡한 주소체계도 원인이다. 만일 주소가 일련화,체계화돼 알기 쉬워진다면 간판들의 크기 경쟁도 한결 줄어들 것이다.

경제적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이 같은 강남 선진화 주소체계를 따를 경우 강남구에서 유류비용만도 연간 67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이 같은 주소체계는 결국 도시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 불편해하는 것 중 하나가 혼란스러운 이정표와 주소체계다. 한국인도 찾기 힘든데 오죽하겠는가. 강남구 선진화 주소체계가 국제도시로서 서울의 이미지를 높이는 징검다리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