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남초등학교 정문 앞.막 수업을 끝낸 수십명의 학생들이 오토바이 자동차 등과 뒤섞여 차도를 지나고 있다. 이곳은 학교 반경 300m 이내로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으로 지정된 곳.하지만 인도가 좁은 데다 불법주차 차량이 많아 차도를 인도처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용산구에 위치하고 있는 청파초등학교 앞도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지만 인도조차 설치돼 있지 않은 상태다. 명목상으로는 '어린이 보호구역'이었지만 '어린이 위험구역'이나 다름 없었다.

도로교통공단과 경찰청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이는 연평균 423명.하지만 서울시는 '어린이 보호구역'의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현황도 모르니 대책이 있을 리 없다. 시 관계자는 "학교 앞 도로 상황에 대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했다.

관련 규정도 미흡한 상태다. '어린이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을 보면 '어린이 보호구역' 내 인도를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다만 해당학교와 지자체가 협의해 설치할 수도 있다는 애매한 규정만 있을 뿐이다. 이러다 보니 해당학교와 구청도 서로 책임만 떠넘길 뿐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청파초등학교 측에 인도 확장 계획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며 "맞은편은 개인 소유 토지라 학교 측의 도움없이 인도를 확장하기 어렵다"고 책임을 학교 측에 미뤘다. 학교 측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청파초등학교 측은 "후문이 있어서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다"며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시와 학교 측이 나몰라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차도를 통해 매일 등하교하고 있다. "집이 정문 앞 아파트라 이 길로만 다니는 데 인도가 없어 위험하다. 하루빨리 안심하고 다닐 수 있도록 인도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 청파초등학교 5학년 강모양(12)의 바람에 학교 구청 등 관계기관이 더이상 귀를 막지 않았으면 한다.

이재철 사회부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