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힘이다!] 지고지순 VS발칙한 '질풍노도의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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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소녀의 심리 묘사 '레이스 뜨는 여자' '습지대'
성향은 정반대이지만 마음속 깊이 상처를 안고 있다는 점은 동일한 소녀를 다룬 해외 소설 두 편이 출간됐다.
《레이스 뜨는 여자》(파스칼 레네 지음,이재형 옮김,부키)는 단단한 영혼에 사랑의 상처를 입고 무너져 내리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둥글고 반들반들한 뺨을 지녀서 '뽐므'(사과)라는 별명이 붙은 소녀가 있었다. 겉모습처럼 내면도 둥글고 매끈매끈한 뽐므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동시에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모호한 매력을 가진 여인으로 자라나고,휴가지에서 한 남자를 만나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뽐므의 상대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고문서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 에므리.
사랑하는 두 남녀는 파리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미용실 직원과 귀족 집안의 학생이라는 신분 차이 외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맞물릴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그들은 같은 세계에 속해 있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에므리는 뽐므에게 이별을 통고하고,뽐므는 "아,좋아요!"에 이어 "알고 있었어요"라고만 말할 뿐 별다른 말썽을 일으키지 않은 채 이별을 받아들인다.
이전에는 에므리가 아무리 바꾸려고 들어도 '쉽게 잡아늘일 수 있되 거기에 생긴 자국은 곧 없어지는 특성이 있는 반죽과도 같던' 뽐므였지만,이별 당시에는 별다른 고통의 징후도 드러내지 않았던 뽐므였지만 실연의 고통은 곧 뽐므를 고통의 끝자락까지 내몰게 된다.
짧고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구조지만 뽐므의 내면이나 뽐므와 에므리의 관계를 설명하는 문장의 밀도는 상당하다. 이자벨 위페르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습지대》(샤를로테 로쉬 지음,김진아 옮김,문학세계사)의 주인공인 열아홉 소녀 헬렌은 뽐므와 정반대다. 헬렌은 치질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런데 환자 헬렌의 주관심사는 수술이 아니라 수술 대상이 될 환부 주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18세 미만 관람불가' 사건들이다.
소설 초반부터 자신은 몇 년째 항문으로 성공적인 성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공언하며 독자들을 당황하게 하는 헬렌은 점잖은 신사숙녀가 보기에는 가당치도 않은,음담패설에 가까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헬렌은 아보카도로 자위기구를 만들고,여성의 은밀한 부분에서 나오는 분비물의 맛이 어떤지 일반 상식에서 보자면 지저분하고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말을 계속한다. 헬렌의 온갖 엽기적인 언사 뒤에 드리워진 불우한 가정사가 내비치며,헬렌의 자해가 부모의 재결합을 위한 행동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소설만큼 작가의 이력도 특이하다. 독일 일대에서 '진공청소기로 자위하다 생긴 페니스 부상'에 대한 박사논문의 낭독회를 열어 화제를 모았고,"나는 침대에서 한 판 하기 전 알리스 슈바르처 부인(독일의 페미니스트)에게 허락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식으로 거침없이 말한다니,역시 그 소설에 그 작가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성향은 정반대이지만 마음속 깊이 상처를 안고 있다는 점은 동일한 소녀를 다룬 해외 소설 두 편이 출간됐다.
《레이스 뜨는 여자》(파스칼 레네 지음,이재형 옮김,부키)는 단단한 영혼에 사랑의 상처를 입고 무너져 내리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둥글고 반들반들한 뺨을 지녀서 '뽐므'(사과)라는 별명이 붙은 소녀가 있었다. 겉모습처럼 내면도 둥글고 매끈매끈한 뽐므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동시에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모호한 매력을 가진 여인으로 자라나고,휴가지에서 한 남자를 만나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뽐므의 상대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고문서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 에므리.
사랑하는 두 남녀는 파리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미용실 직원과 귀족 집안의 학생이라는 신분 차이 외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맞물릴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그들은 같은 세계에 속해 있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에므리는 뽐므에게 이별을 통고하고,뽐므는 "아,좋아요!"에 이어 "알고 있었어요"라고만 말할 뿐 별다른 말썽을 일으키지 않은 채 이별을 받아들인다.
이전에는 에므리가 아무리 바꾸려고 들어도 '쉽게 잡아늘일 수 있되 거기에 생긴 자국은 곧 없어지는 특성이 있는 반죽과도 같던' 뽐므였지만,이별 당시에는 별다른 고통의 징후도 드러내지 않았던 뽐므였지만 실연의 고통은 곧 뽐므를 고통의 끝자락까지 내몰게 된다.
짧고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구조지만 뽐므의 내면이나 뽐므와 에므리의 관계를 설명하는 문장의 밀도는 상당하다. 이자벨 위페르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습지대》(샤를로테 로쉬 지음,김진아 옮김,문학세계사)의 주인공인 열아홉 소녀 헬렌은 뽐므와 정반대다. 헬렌은 치질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런데 환자 헬렌의 주관심사는 수술이 아니라 수술 대상이 될 환부 주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18세 미만 관람불가' 사건들이다.
소설 초반부터 자신은 몇 년째 항문으로 성공적인 성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공언하며 독자들을 당황하게 하는 헬렌은 점잖은 신사숙녀가 보기에는 가당치도 않은,음담패설에 가까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헬렌은 아보카도로 자위기구를 만들고,여성의 은밀한 부분에서 나오는 분비물의 맛이 어떤지 일반 상식에서 보자면 지저분하고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말을 계속한다. 헬렌의 온갖 엽기적인 언사 뒤에 드리워진 불우한 가정사가 내비치며,헬렌의 자해가 부모의 재결합을 위한 행동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소설만큼 작가의 이력도 특이하다. 독일 일대에서 '진공청소기로 자위하다 생긴 페니스 부상'에 대한 박사논문의 낭독회를 열어 화제를 모았고,"나는 침대에서 한 판 하기 전 알리스 슈바르처 부인(독일의 페미니스트)에게 허락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식으로 거침없이 말한다니,역시 그 소설에 그 작가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