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엔=1500원으로 2배 급등…은행 "대출한도 초과분 갚아라" 압박

서울 강남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김모씨는 얼마 전 은행으로부터 한 통의 통지서를 받았다. 작년 8월 식당을 확장하기 위해 엔화대출로 3억원을 빌렸는데 갑자기 1억원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원ㆍ엔 환율이 올라 원화 기준으로 맺은 약정 대출 한도(5억원)를 넘어서 그 초과분만큼은 상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은행은 "한 달 내에 1억원을 상환하지 않으면 대출 담보로 제공한 식당을 처분할 수 있다"는 으름장도 놓았다. 김씨는 "돈을 더 쓴 것도 아니라 단순히 환율이 올라 생긴 일이니 대출 한도를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원ㆍ엔 환율이 급등하면서 엔화 대출자들의 고통이 극에 달하고 있다. 엔화 가치가 상승해 이자 부담이 늘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만기 연장도 잘 안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최근에는 원ㆍ엔 환율이 올라 원화로 표시되는 대출액이 최초에 맺은 약정 대출 한도를 초과해 갑자기 원금의 일부분을 상환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실제 작년 7월 100엔당 745원대에 머물렀던 원ㆍ엔 환율은 지난달 1000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 24일엔 1509.97원을 기록했다. 1년3개월 만에 두 배 이상 뛴 것이다. 작년 7월 은행에서 1억엔을 빌렸다면 당시 원금이 7억여원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5억원이 넘는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최초에 엔화대출을 받을 때 은행과 맺은 약정 대출 한도를 넘어서는 대출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엔화대출의 평균 한도는 개인의 경우 5억원인데 작년에 엔화로 3억원 이상 빌린 대출자들은 현재 대부분 은행으로부터 원금 상환 압력을 받고 있다.

엔화 대출자들은 "은행이 대출 한도만 올려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은행은 "대출 한도 상향조정은 신규대출을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한도를 쉽게 올려줄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외화 지급보증을 해주면서 은행에 해외자산을 줄이라고 하고 있는데 어느 은행이 엔화대출 한도를 올려주겠느냐"며 "엔화가 꼭 필요한 수입기업을 제외하고 담보가치가 떨어지거나 신용도가 낮은 개인과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 원금 일부분을 갚으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일부 은행들은 원ㆍ엔 환율 상승으로 약정 대출 한도를 초과한 금액을 갚지 않으면 담보물을 회수할 수 있다고까지 압박하고 있다.

상환 독촉에 시달리는 엔화 대출자들은 원화대출로 갈아타려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대출 금리가 치솟기 때문이다. 리보금리(런던은행 간 대출금리)에 연동되는 엔화대출 금리는 2006년께 연 2~3%에서 현재 4~6%로 올랐지만 여전히 원화대출로 전환할 때 적용받는 금리보다 2%포인트가량 낮다. 이 때문에 원ㆍ엔 환율이 오르고 있어도 엔화대출 잔액(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ㆍ기업은행 기준)은 6월 말 8963억엔에서 지난달 말 9232억엔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한편 엔화가치 상승으로 일본에서 엔화를 원화로 바꿔 국내에 송금하는 교민들이 증가하고 있다. 시중은행 도쿄지점의 한 관계자는 "원ㆍ엔 환율이 1300원대에 진입한 이후 한국으로 송금하는 엔화 액수가 20%가량 늘어났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