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경 <고려대 명예교수·경제학>

말로만 '괜찮다'는 하루짜리 대책들

울부짖는 사람들과 현장에서 교감해야

세상 이치가 다 그렇듯이 경제도 계속 좋을 수 없다. 중국의 저가생산품과 선진국의 저금리가 지속되는 동안 세계경제는 너무 오랫동안 호황을 누려왔다. 이 호황을 타고 금융은 화약을 쌓듯이 분별없이 수익만을 좇아 뛰고 있었다. 이래선 안 된다는 경고가 그치지 않았다. 미국에서 비우량주택담보대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을 때 이미 세계금융의 위기는 시작됐고 위기가 예상을 뒤엎고 공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도 많았다. 금융공황이 현실로 나타났고 앞으로 실물경제의 공황도 예상하고 있다. 경제 전체의 공황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 자체가 현실화의 바탕이다.

미국의 금융문제가 심각하게 전개되는데도 한국에서는 딴전을 피웠다. 대통령이 주가지수가 3000이 될 수 있다고 하는가 하면 경기부양을 한답시고 장관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가 하면 한국은행은 물가를 잡는다고 이자율을 올리고 있었다. 금융사들이 묻지마식 대출,펀드유치,무작정 부풀리기 경쟁 등으로 부실을 자초하고 있어도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리고 외환보유고가 충분하니 걱정 없다는 듯이 여유만만한 기색이었다. 마치 세계금융위기에 철통방어를 완전무결하게 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미국의 금융공황이 현실로 나타나 우리나라의 주식가격이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자 태도를 바꾸는 모습이 너무나 황당하다. 국민을 안심시키고 국제공조를 하면 아무 일 없을 뿐만 아니라 위기가 기회라고 강조하며 국가경쟁력 강화를 운운하던 대통령과 하루하루의 상황에 우왕좌왕하면서 즉흥적인 대처방법을 쏟아 내놓는 장관이나 한은 총재의 모습이 국민의 신뢰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정부의 대책이 시장에 영향을 주지 못 하고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잃어 가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의 위기대처 방법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첫째,정부가 모든 시나리오를 놓고 정밀하게 시뮬레이트(simulate)해 정부 대책에 대한 효과를 분석하고 순위와 실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사게 하고,환율이 오르면 달러 내다 팔고,실물경기가 어렵다니까 건설회사 미분양주택 사주고,은행이 불안하니까 무제한 담보해주고,펀드에 문제 생기니까 한은이 펀드채 사주고,국제수지 개선하기 위해 수입 줄이고 하는 등 땜질식 대응을 할 상황이 아니다.

둘째,세계공황이 본격화되고 있는데 정부가 우리나라 경제를 현상유지하겠다거나 공황을 무난히 피하겠다는 허황된 꿈이나 희망을 버려야 한다. 한국경제가 위험하다는 외국의 경고와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분별없이 마구 지었다가 팔지 못 하는 미분양주택을 정부가 사줘야 할 만큼 여유 있는 때가 아니다. 앞으로 재고를 사 내라고 사생결단으로 덤비는 업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또는 이자를 못 내겠다고 버티는 주택담보 대출자의 요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펀드로 전 재산을 날렸다고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셋째,정부가 임기응변으로 우선 위기를 모면하고 보자는 얄팍한 대응은 하지 말아야 한다. 괜찮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도 괜찮다고만 했다가 괜찮지 않으면 정부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정부의 최후 수단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게 되는 대단히 위험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 대통령이 현장의 경제인들을 만나 실상을 들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세계경제의 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으면 어쩔 수 없다고 하고 최후수단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심리만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안이한 상황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