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포럼 2008 D-7‥(7) 인재가 미래다] 독일 아헨공대의 산학협동 … "Study in Indu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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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아헨시내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포플러 길을 따라 오르니 중세풍의 건물 하나가 나온다. 1870년에 지어진 아헨공대(RWTH) 본관 건물이다. 바로 맞은 편엔 최신식 빌딩이 우뚝 솟아 있다. 최근 지어진 행정관이다. 대학처럼 보이는 건 두 건물이 고작이다. 제대로 된 캠퍼스도 없다. 강의실은 도로변에 흩어져 있다. 겉으로만 보면 '유럽판 MIT(매사추세츠공대)'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본관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이동하자 풍경이 달라진다. 광활한 벌판에 4~5층짜리 나지막한 빌딩들이 수십개 자리잡고 있다. 아헨공대가 자랑하는 '공작기계 및 생산공학연구소(WZL)'의 산·학협동 클러스터(연구단지)다. WZL은 아헨공대가 운영 중인 260개의 대학연구소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1906년 설립돼 100년이 넘었다. 오랜 역사답게 1만㎡(약 3000평) 부지에 200여명의 석ㆍ박사급 연구원과 250여명의 박사과정 연구원을 포함해 총 600여명의 연구 및 행정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웬만한 글로벌 기업의 연구소를 뺨치는 규모다. 겉모습만 봐도 "우리 학생들은 산업 현장에서 공부한다(We study in Industry)"는 에른스트 슈마크텐베르그 총장의 말이 실감난다.
슈마크텐베르그 총장의 권유로 들어선 4층짜리 건물.첨단 기계들이 꽉 들어차 있다. 육중한 기계의 모니터를 쳐다보며 연구에 몰두하는 직원들 사이로 '최고의 클러스터-고소득 국가를 위한 통합적 생산 기술 개발'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 온다. 올해 아헨공대의 3대 클러스터로 선정된 실험실 중 하나다. 독일처럼 고소득 국가의 기업들이 틈새 시장과 대중 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이들의 연구과제다.
슈마크텐베르그 총장은 "이곳에는 아헨공대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담겨있다"며 "기업들의 요구에 부응해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학교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지 몰라도 우리 학생들은 연구실에서 제품을 연구한다"며 "기업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대학 전체 예산의 50% 이상을 공대에 투자하고 산·학협력을 통해 얻는 재정을 모두 공대에 쏟아 붓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실제가 그렇다. 아헨공대는 설립 이후 긴밀한 산·학협력을 통해 독일 제조업의 바탕을 일구어 왔다. 260개의 부설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모두 기업과 공동으로 이뤄진다. 시장이나 기업에서 요구하는 기술은 대학 교과과정과 연구소 연구과제로 곧바로 채택된다. 학교가 새로 개발한 기술이나 성과는 기업체가 응용한다. 기초기술에서 응용기술까지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모든 기술을 연구한다는 게 아헨공대의 목표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의 연구 의뢰가 줄을 잇는다. 미국의 포드자동차가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아헨공대와 산·학협동을 맺고 연구소를 세웠을 정도다. 아헨공대와 산·학협력을 맺은 기업은 3000개가 넘는다. 당연히 연구지원금도 많이 들어온다. 이는 학교재정을 풍부하게 하고 우수한 교수를 충원하며 기술개발을 앞당기는 촉매역할을 한다.
아헨공대에 입학하고 졸업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학부에 입학하려면 반드시 2개월의 현장실습 증명서를 내야 한다. 졸업하기도 힘들다. 졸업 전까지 일정 기간을 연구소에서 일해야 한다. 기업체에서 현장 실습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아헨공대를 졸업한 인재에 대해선 세계 기업이 '품질'을 인정한다. 매년 세계 대학평가 결과 전자공학과 기계공학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작년 독일 정부로부터 '10대 엘리트 대학'으로 선정돼 5년 동안 6000만유로의 지원도 받고 있다. 올해 생명공학부에 입학한 러시아 출신의 알렉산더 로더는 "졸업 후 독일에서 취업하기 위해 아헨공대로 왔다"며 "아헨공대 출신은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헨공대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지금까지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있어서다. 산·학협동의 효율성을 꾀하기 위해 최근 대대적인 혁신을 시작했다. 작년에 개발한 '작업 과정의 학습'이란 산·학협동 학습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칼루스 헤닝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지금까지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에서 배우는 과정을 경시해 왔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0여명으로 한 팀을 구성해 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법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총 200명의 팀 구성원 중 50명은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 연구원이다. 엔지니어 및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학자 외에 인문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도 포함된다. 135명은 학생이다. 나머지는 전문기술을 가진 인력이다. 이 과정을 통해 다른 분야의 전공에 대한 시야를 확대하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
작년에 기업의 인사관리(HR) 개념인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통합적 전략'을 도입한 것도 혁신작업의 하나다. 교수 교직원 학생 등 모든 구성원들의 역할을 명확히 하자는 게 골자다. 헤더 호프마이스터 교수(사회학)는 "대학도 결국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라며 "학내 구성원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자기 일을 하도록 돕는 것이 대학에서의 HR"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서 대학 내 효율성 제고를 통해 아헨공대가 추구하는 산·학협력의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지가 물씬 묻어 나왔다.
아헨(독일)=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