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 위로 어머니 품같은 고향의 여운이 가득하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릴 적 뛰놀던 산야와 꽃대가 있고 활짝 열린 동심까지도 보인다. 후두둑 소리를 내는 나뭇가지와 들풀이 손 밑에서 자라난 것처럼 생생하다. 화선지 위의 감칠맛나는 붓질은 예나 지금이나 문인화의 묘미다.

한국화가 임농 하철경 화백(56ㆍ호남대 교수)의 개인전이 29일부터 11월4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이즈에서 열린다.

문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번 전시에는 300호 크기 '꽃바람-송광사'를 비롯해 북한산 가는 길의 풍광,담양의 소쇄원 풍경,서울 '용주사의 봄' 등 우리 산천을 특유의 빠른 필법으로 그린 50여점이 내걸린다.

바닷가 풍경과 사찰 등을 주로 그려온 하 화백은 진한 먹선만 그리는 백묘화법,크고 작은 점(點)을 혼용하는 미점법을 활용해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소재를 전통기법으로 현대적 미감을 살려내는 실경산수 작가다. 우리의 산하를 환경친화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꽃바람-송광사'는 빼곡한 선과 색으로 때묻지 않은 산사의 봄을 빠른 필선으로 표현한 작품.고향의 춘색이 화폭 위로 출렁거리며 싱싱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대상에서 받은 인상과 감흥을 기록한 음색의 하모니'라고 평한다. 화폭에 긴장과 파격,충만과 공허를 리드미컬하게 담아냈다는 의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한수정 갤러리 이즈 대표는 "하 화백 작품의 경우 삶의 방향과 자연의 밀도,고요,억제된 힘,정확한 필묘,극도의 세묘 등이 함께 호흡하면서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남농 허건의 손녀사위인 하씨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02)736-666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