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그림자' 드리운 법조계 풍경
법무사 "등기 1달에 1건…" 폐업 고민
형사사건 국선변호인 선임 요청 급증


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별관 등기과. 부동산 거래가 활발했던 몇 달 전만 해도 등기를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려야 했던 이곳이 한적했다. 경기 불황으로 부동산 거래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의 김명환 등기과장은 "평소 등기관 1명이 한 달 평균 100건 이상씩 처리했는데 이달 들어 70건가량으로 줄었다"며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번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불황의 그늘이 법조계 주변에도 짙게 드리우고 있다.

28일 대법원에 따르면 전국의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기 건수는 지난 4월 29만7702건에서 지난 9월 16만9709건으로 42% 감소했다. 2006년 한 달 평균 25만건,2007년 한 달 평균 22만건과 비교해도 크게 줄어든 수치다. 10월에는 더더욱 줄어들어 지난 21일까지 11만6491건의 등기신청이 들어왔다.

부동산 등기 건수가 이처럼 줄어들자 등기업무에 주로 의존해 온 법무사 사무실에도 비상이 걸렸다. 일부 사무실에서는 직원을 줄이는 등 긴축경영에 나서고 있다. 서울 서초동과 경기도 일산 등 두 곳에서 법무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안암법무사 사무소의 최재훈 법무사는 "연초만 해도 일산의 아파트 단지에서만 한 달에 20건 정도 들어오던 부동산 등기 업무가 최근 한 달에 1건 정도로 줄었다"며 "그나마 회생,파산 업무 등 다른 업무를 같이 해왔기 때문에 아직까지 견딜만 하지만 주변 법무사 사무실은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불황의 여파로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 국가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전국 법원에 돈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국선 변호인을 선임한 형사 피고인 수는 총 3만5782명이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5만2345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지난 8월까지 4만511명의 피고인들이 국선변호인을 선임해 연말에는 6만여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민사소송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소송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변호사를 선임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소송구조 액수도 크게 늘었다. 2006년 7억947만원이었던 대법원의 소송구조 변호사 보수 비용은 2008년 6월까지 7억1200만원이 집행됐다. 서울중앙지법의 홍준호 기획법관은 "소송을 진행하는 데 도움을 받아야 할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로펌들의 사건 수임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그간 주류를 이뤘던 프로젝트 파이낸싱 사건,기업 M&A 사건은 줄어든 대신 기업파산,회생사건이 늘었다. 이에 따라 각 로펌들도 도산 절차 관련 팀을 보강하는 등 발빠른 대처를 하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의 강희철 변호사는 "올 들어 국제 도산업무 문의가 작년 대비 50% 증가했다"며 "최근 한 달 새 국제 도산업무와 관련해 5건 이상의 문의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김상준 변호사는 "건설사들이 은행대출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프로젝트 파이낸싱 사건 등은 소강 상태"라며 "도산 관련 금융분쟁 등에 대한 수요는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