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쌀 때 사두자" 日서 엔화송금ㆍ환전 폭증

28일 오전 10시 일본 도쿄 시내에 있는 외환은행 도쿄 지점.50여명의 손님들이 창구 앞을 가득 메운 가운데 이석훈 지점장이 직접 대기 번호표를 뽑아 주며 고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손님은 93번째 송금 대기자이기 때문에 오후 5시 정도까지는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때 보내면 오늘 환율이 아니라 내일 환율이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이 지점장) 여섯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국에 돈을 보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손님들은 대기표를 마다하지 않고 줄지어 받아간다.

일본 내 한국 은행 지점들이 요즘 엔화 송금과 원화 환전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최근 원ㆍ엔 환율이 100엔당 1500원을 넘어서는 등 가파르게 오르자 비싼 엔화를 원화로 바꿔 한국에 보내려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원화가 쌀 때 사 뒀다가 오르면 되팔아 환차익을 챙기려는 일부 일본인들의 투기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한국계 은행들은 밀려드는 고객들로 인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지점장은 "10월 들어선 오전에만 100명 이상의 손님들이 원화 환전이나 엔화 송금을 위해 창구 앞에 몰린다"며 "손님들이 끊이지 않다 보니 전 직원이 점심도 못 먹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도쿄지점의 경우 지난 9월까지만 해도 한 달에 3000건 안팎이었던 한국으로의 엔화 송금 건수가 이달 들어 지난 24일까지 6840건으로 두 배를 넘었다. 같은 기간 중 송금 액수는 1000억원 안팎에서 1700억원으로 증가했다. 엔화를 원화로 바꿔 송금하는 사람은 한국에 사업체 등이 있는 재일교포나 일부 한국 기업 주재원들이 대부분이다. 작년 6월까지 100엔당 750원이던 원ㆍ엔 환율은 28일 1590원까지 뛰었다. 1년여 전엔 100만엔을 보내면 750만원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1590만원으로 두 배가 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환율이 뛰자 한국에 송금처가 없는 일부 재일교포나 일본인들은 엔화를 원화로 단순 환전해 현금으로 가져가는 경우도 많다. 나중에 다시 원화가 비싸지면 엔화로 되바꿔 환차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다. 이러다 보니 한국 은행들의 금고에서 원화가 바닥 나는 품귀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은행과 외환은행 도쿄지점은 보유 원화가 떨어져 28일 원화 환전을 중단하기도 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정인설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