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훈 <한국증권연구원 부원장>

업무간 마찰 줄고 경영 컨트롤타워 생겨

지주사법 개정 서둘러 경쟁력 강화해야

금융지주회사 체제는 내부겸영(in-house) 방식,모자회사(parent-subsidiary) 방식과 더불어 금융회사가 겸업을 수행하기 위한 보편화된 조직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금융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현재 설립된 금융지주회사는 다섯 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마디로 금융회사 입장에서 볼 때,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별 도움이 안 되며,심지어는 손해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융회사나 금융그룹이 해외 진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특정국가에 거점 금융회사를 설립하고,이러한 거점 금융회사가 다시 인접국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를 상정해보자.이 경우 모자회사 방식을 택하고 있는 금융그룹에서는 아무런 제한없이 해외진출이 가능하다. 국내의 한 은행이 미국에 은행자회사를 설립하고,해당 은행 자회사가 다시 멕시코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식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금융그룹이 금융지주회사라는 조직체를 이루고 있을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기존의 금융지주회사법에서는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까지만 수직확장을 허용하고 있어,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해외진출은 애초에 꿈도 꾸지 못한다. 이밖에도 내부겸영이나 모자회사 방식 대신 금융지주회사를 택할 때 입게 되는 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여타 조직화 방식에 비해 지주회사 방식이 이러한 대접을 받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사실 지주회사 방식이 겸업화 방식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라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우선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경영효율성 측면에서 여타 조직화 방식보다 우월한 부분이 많다. 지주회사가 강력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그룹내 경영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으며,이종 업무를 별도의 조직체로 분리함으로써 이질적 업무의 영위에 따른 마찰도 최소화될 수 있다. 이러한 경영상의 효율성으로 인해 세계 20대 은행중심 금융그룹 중에서는 70%가,그리고 금융투자업 중심의 금융그룹 중 90%가 지주회사 체제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당국의 감독 차원에서도 지주회사 체제가 갖는 장점은 많다. 금융겸업화가 진행될수록 이질적인 업무수행에 따른 복잡성이 증대되는데,이에 따라 해당 금융그룹이 어떻게 영위되는지를 외부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말해 금융그룹의 투명성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겸업을 위한 조직화 방식 중,투명성은 지주회사 방식이 단연 으뜸이다. 지주회사의 경우 소유지배 관계가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져 순환출자,상호출자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극히 단순한 형태를 띠게 된다. 이에따라 외부에서 금융지주회사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것이 수월해짐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지주회사 체제 하에서는 이질적인 금융업종들 간의 출자나 거래가 비교적 엄격하게 제한되는데, 이에 따라 특정 업종에서의 부실이 여타 업종까지 파급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제도는 불투명한 모자회사 형태에서는 가능한 것을 보다 투명한 지주회사 형태에서는 할 수 없도록 하는 불합리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지금 입법예고 중이다. 국내에 금융지주회사제도가 도입된 이후,사실상 처음 단행되는 대규모 개정이다. 그 동안 학계와 업계를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수년째 제기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이번의 개정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번 개정을 통해 해외 유수의 금융그룹들만이 향유하던 조직선택의 자유를 국내 금융그룹들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