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전문가 진단] 루벤 바르다니안 "부실채권 정보 공개돼야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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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이머징마켓은 계속 성장할 겁니다. 새로운 금융질서를 만들기 위한 신브레튼우즈 체제 구축에 신흥국의 역할이 강화돼야 합니다. "
외교통상부가 주관하는 세계지도자 포럼 참석차 방한한 러시아 최대 투자은행 트로이카 디알로그의 루벤 바르다니안 최고경영자(CEOㆍ40)는 29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아르메니아계로 모스크바국립대 경제학과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바르다니안은 트로이카 디알로그를 16년째 이끌고 있다.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언스트 앤드 영이 선정한 러시아 최우수기업가로 뽑혔고,작년에는 주러시아 미국상공회의소의 '올해의 비즈니스맨'으로 선정됐다. 2003년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해 온 바르다니안은 지난 6월 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 국제자문위원에 위촉됐다.
―지금의 금융위기를 끝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언제쯤 끝을 볼 수 있을까.
"이번 금융위기는 신뢰가 실종된 탓이다. 누가 좋은지 나쁜지,누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구조조정 당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없는 시스템 신뢰의 문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서 시작된 부실채권에 대한 모든 정보가 즉각 공개돼야 한다. 투명성 강화로 신뢰가 회복되고 유동성이 공급돼야 금융시장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갈 것이다. 하지만 향후 2∼3년 세계경제는 침체를 겪을 것이다.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고 이 과정에서 이머징마켓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다."
―러시아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러시아는 정치적인 파워나 자원보유 규모 면에서 세계적인 대국이다. 러시아의 대통령과 총리 모두 신브레튼우즈 체제로 통하는 새로운 금융질서 재편 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서유럽이 주도해온 국가관계도 새롭게 정립될 것이다. 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선진 8개국(G8)이 아닌 선진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아시아 중동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푸틴 러시아 총리가 달러가 기축통화인 현 세계금융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달러 기축통화를 다극 통화체제로 바꾸는 문제는 새로운 금융질서에서 중요한 문제다. 신브레튼우즈 체제를 논의할 때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본다."
―러시아 금융시장도 최근 증시 거래가 자주 중단되는 등 이번 금융위기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러시아 금융시장의 역사는 짧다. 10여년 안팎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국내 투자자의 역할이 크지 않다. 러시아 증시의 외국자본 비중이 60%에 달해 이번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53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 등 유동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펀더멘털이 충분해 이겨낼 수 있다. 러시아도 국내 금융회사를 육성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다."
―러시아의 지속성장 모델은.
"러시아는 원자재 가격 급등 등의 혜택을 받아 성장해왔다. 인프라 투자와 재정 지출을 확대해 내수 진작에 적극 나설 것이다. 인재 양성을 위해 정부 도움을 받아 세계적인 경영대학원을 내년에 개교한다. 5억달러를 투자해 설립하는 이 학교는 이머징마켓에 특화한 전문인재를 양성할 것이다. 또 이머징마켓연구원도 설립해 세계적인 석학들을 전문가 풀로 만들어 이머징마켓의 대표적인 싱크탱크로 키울 계획이다."
―이머징마켓도 이번 금융위기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모든 나라가 글로벌화의 수혜자인 동시에 피해자임을 이번에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내년에도 8% 이상의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신흥국의 성장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5%가 넘는 성장은 고성장이다. 하지만 이머징마켓은 내수시장을 키워야 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외국 언론들이 한국이 또다시 10년 전과 같은 외환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그런 면에서 나온 시각일 것이다. 한국 자체만으로 보면 외환보유액도 그렇고 경제가 예전 위기 때에 비해 훨씬 튼튼해졌다. 한국 자체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한국에 투자할 계획이 있는가.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당장 몇개월 내 투자 결정이 이뤄지기는 힘들다. 그러나 러시아와 한국은 중장기적으로 상호투자가 확대될 기회가 많을 것으로 믿는다."
글=오광진 기자/사진=임대철 인턴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