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청심환을 먹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

"막말을 하는 고객들 때문에 하루에 두세 번은 탈의실에서 울고 나옵니다. "

국내외 증시가 끝모를 추락을 거듭하면서 부자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의 고통도 극에 달하고 있다. 은행들은 부자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고품격 PB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지극 정성을 다해왔지만 수익률은 일반 고객과 별반 차이 없이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PB는 "일반 고객들처럼 PB 고객들도 펀드나 주식에서 50% 이상 손해를 봤다"며 "특정 지역이나 상품에 수백억원을 들인 고객들의 평가손실 규모는 100억원을 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 은행에서 800억원가량을 주가지수연계증권(ELS)에만 투자한 PB 고객의 경우 투자상품 수익률이 반토막 나 현재 400억원가량 빠졌다. 중국펀드와 브릭스 펀드에 400억원 정도 투자한 고객은 수익률이 마이너스 60%대로 떨어져 160억원가량만 통장에 남아있다.

막대한 손실을 본 고객들은 PB들에게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왜 수익률이 마이너스 10%대일 때 손절매를 하지 않았느냐"는 원망에서부터 "은행의 꼬임에 빠져 펀드에 투자했으니 손실액을 물어달라"고 우기기도 한다.

이에 대해 PB들은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고객에게 큰 손실을 끼쳐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며 "시간이 지나면 호전될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분노는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강남지역의 한 PB는 "평소에 대소사를 다 챙겨주고 한 가족처럼 지냈던 고객들마저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이성을 잃고 막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도 꾹 참고 고객들을 달래는 것밖에 대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일부 PB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다른 부서로 인사 이동을 요청했지만 "내 돈 떼먹고 어디 가느냐"는 고객들의 항의에 부닥쳐 PB고객 창구에 눌러앉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한 은행의 PB는 고객과 심하게 다툰 뒤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PB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서 일부 은행들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상담센터를 설치해 고충을 들어주고 있다.

한편 PB 고객들은 최근 들어 펀드와 주식을 대거 처분하고 예금이나 채권 등 안전자산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조윤선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은행별 프라이빗 뱅킹(PB) 고객 현황'에 따르면 국민은행 PB 고객들의 전체 자산 중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말 31.5%였으나 올해 9월 말 45.8%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펀드 비중은 2007년 말 54.1%에서 9월 말 35.8%로 크게 축소됐다.

신한은행도 PB 고객들의 예금 비중이 지난해 말 28.2%에서 9월 말 30.8%로 늘어난 반면 펀드 신탁 등 투자자산 비중은 58.3%에서 53.9%로 줄었다.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이 기간 중 예금은 50%에서 54%로 증가한 반면 투자상품은 47%에서 45%로 감소했고 SC제일은행도 예금 비중이 40.7%에서 43.5%로 확대됐지만 투자상품 비중은 58.0%에서 47.9%로 줄어들었다.

정인설/이준혁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