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과 건설 강국으로만 알고 있던 한국이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사실을 이번에야 알게 됐습니다. " "한복을 입고 거닐었던 창덕궁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

에쓰오일의 대주주이며 세계 1위 원유 수출 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차세대 리더 17명이 한국문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들은 아람코의 한·중·일 아시아 문화체험 행사인 ABC(Asian Business Culture)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첫 도착지인 한국을 방문,지난 23일부터 29일까지 7일간 창덕궁,국립중앙박물관,비무장지대(DMZ),인사동 등을 돌며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금융,재무,마케팅 등 다양한 부서에서 뽑힌 과·부장급 핵심 인력들로 향후 아람코의 해외 사업을 이끌어가게 된다.

일주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들은 '정'(情)이란 단어를 또렷하게 발음할 정도로 인간미 넘치는 한국인과 한국 정서에 매료돼 있었다. 오마르 살레 바주하 엔지니어링 담당 과장은 "고기 한움큼과 김치,채소를 같이 싸주던 인사동 식당의 주인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정이야말로 한국인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경쟁력이라고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1998년 이후 10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사드 알 하드라미 원유 마케팅 부장은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한국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며 "10년 전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한국이라면 현재의 금융위기를 떨쳐버리는 것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아 알 하즈미 재무·회계 담당 부장은 "판문점에서 만난 젊은 군인들의 늠름한 모습과 서울시내 길거리를 오가는 젊은이들의 밝은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뤘다"며 "어떤 일이든,어떤 분야에서든 열정을 갖고 행동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한·중·일 3개국 가운데 한국을 첫 번째 방문지로 택한 것에 대해서도 이들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마드 알 두하이 대외협력 담당 부장은 "아람코의 성공적인 해외 투자 사례로 손꼽히는 에쓰오일이 있는 한국을 가장 먼저 방문하고 싶다는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내부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아람코는 국내 원유의 29%,액화석유가스(LPG)의 24%를 공급하고 있으며 1991년부터 에쓰오일에 대한 지분 투자를 시작해 현재 에쓰오일 지분 35%를 보유한 대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람코의 ABC 프로그램은 원유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한·중·일 아시아 국가의 문화 경험을 위해 만든 사내 프로그램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