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이코노미스트, 달러패권 포기해야 금융위기 해결사 나설 듯

'미국이 달러 권력을 먼저 포기하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11월1일자) '중국,중앙무대로 진출하다(China moves to centre stage)'라는 기사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해결사로 나설 것을 촉구 받는 중국이 말없이 내건 전제조건은 '미국의 달러권력 포기'라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중국이 금융위기 발발 후 '국제적 협조 강화'를 강조하고 반서방 진영 국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면서도 정작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은행이나 유럽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이라고 비난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미국이 지배하며,달러의 유일권력을 향유하는 현 체제가 유지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류밍캉 중국 은행감독위원장은 지난 9월 말 톈진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미국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액션이 뒤따르지 않았다. 한때 중국이 미 국채 2000억달러어치를 살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인민은행은 이를 부인했다. 이는 미국의 전향적인 자세 전환이 전제되지 않으면,중국 역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라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해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지도부가 금융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강조하면서 "국제금융기구의 개혁이 시급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전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광명일보도 이날 금융위기에서 중국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중국 구세론'은 없다고 보도했다. 광명일보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자 '중국 실패론'을 떠들던 서방 언론이 이후 중국의 경제발전에 '중국 위협론'으로 시비를 걸더니,이제 '중국 구세론'을 언급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광명일보는 특히 '중국 구세론'은 중국의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며 중국은 13억명의 인구를 가진 개발도상국으로 나라살림이 더 시급하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는 서방이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지갑을 열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에 대해 달러 권력의 포기를 종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게 곳곳에서 탐지되고 있다. 러시아 기업에 250억달러를 지원하고 원유 3억t을 사기로 계약한 것은 물론 베트남과는 경제개발을 위한 공동 5개년 계획을 수립키로 했다. 한발 더 나가 카자흐스탄 등 상하이협력기구 회원국들에는 저리 자금을 융자해주기로 했다. 중동 국가들과는 비정부기구(NGO) 교류를 확대키로 했다. 일본과는 양국 정상 간에 핫라인 개설에 합의한 상태다.

달러 일변도인 기축통화를 위안화 등으로 다변화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금융위기로 혼돈에 빠져 있는 사이 영향력 확대를 위한 가속패달을 밟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오는 15일 미 워싱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담에서 신흥국의 입장이 분명히 반영돼야 한다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카네기재단의 발버트 카이델 연구원은 "중국은 트러블 메이커가 되기를 원치 않지만 또 달러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동시에 세계의 중앙무대에 서기를 바라고 있다"며 "G20 회담에서 중국이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장규호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