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일렉트로닉스(이하 대우일렉)도 한때 잘나가던 때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빅 히트를 쳤던 공기방울 세탁기를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가전제품 대리점 사장들이 공장 앞에 장사진을 이뤘다. 옛 대우전자는 삼성 LG와 함께 국내 가전시장을 확실하게 3분하고 있던 강자였다. 하지만 대우그룹이 무너지고 난 뒤 이 회사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LG 삼성은 이제 예전처럼 대우를 경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는 조직'에도 내일을 향한 꿈틀거림은 있다. 그렇게 해서 작지만,소중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대우일렉의 국내 드럼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최근 몇 년간 5%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목표는 20% 선으로 크게 늘려 잡았다. 지난 1월 초 내놓은 '드럼업' 세탁기 매출 증가에 힘입은 것.

▶▶ 평균 연차 10년ㆍ대우의 영예 되찾기 위해 남았다

변화의 주역은 12명의 드럼업 세탁기 태스크포스(TF) 팀원들이다. TF팀의 리더이자 세탁기 연구소장인 박선후 이사는 팀원들을 "아픔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이 팀원들은 3~4차례의 구조조정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니라 '안 나간' 사람들이다. 평균 연차도 10년이 넘는다. 그 정도 경험이면 어디서 부장급 대우라도 받을 텐데 한때 대우의 영예를 다시 찾을 생각으로 남은 이들이다. 대우일렉은 드럼업 덕분에 지난 상반기 매출 9400억원에 영업이익 85억원을 내며 흑자로 전환했다. 드럼업은 대우일렉이 3년간 정성을 쏟아 개발한 제품으로 드럼의 높이를 11㎝ 올리고 버튼 위치도 측면에서 상단부로 바꿨다.



▶▶ 잦은 스킨십ㆍ자유로운 의사 소통의 장을 만들다

2006년 9월 이승창 대우일렉 사장은 박 이사로부터 갑작스러운 요청을 받았다. 세탁기 개발을 위해 각 분야의 베테랑으로 구성된 TF팀을 만들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TF팀 구성에 대한 기안은 준비돼 있었고 2007년 가을까지 신제품을 만든다는 목표도 정해져 있었다. 경쟁사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12명의 팀원으로 출발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이 사장은 팀 구성을 허락했다. 문제는 팀을 꾸리고 난 뒤부터 시작됐다. 비상근 조직인 탓에 모이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것.자기 업무에 쫓기다 보니 평균 회의 출석률이 50%에도 못 미쳤다. 박 이사는 이때부터 '회의는 짧게 회식은 길게'라는 모토를 잡고 TF팀 회의를 회사 외부에서 진행했다. 신촌,홍익대 근처에서 팀원들과 만나 회의를 간단히 한 뒤 술집으로 직행했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의견 교환이 자유로워지다 보니 회의 출석률도 높아졌다.

가장 큰 소득은 자유로운 의견 교환의 장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이 팀의 막내이자 국내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백경태 대리는 "대기업 조직에서 발언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TF팀원끼리 스킨십이 많아지니 막내인 나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야근을 밥먹듯…'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

2007년 12월 크리스마스 날, 드럼업의 디자인을 맡은 박성철 책임연구원은 경기도 수원의 한 공장에서 '미친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문전박대를 당했다. 박 연구원은 출시를 앞둔 드럼업의 저가형 모델에 120만원이 넘는 타사의 고가형 모델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꽃무늬 패턴을 적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뒷면에 꽃무늬 패턴을 인쇄한 유리로 세탁기 전면을 꾸미는 것이 고가형의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저가형 모델은 구조적으로 유리 대신 철판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박 연구원은 철판에 꽃무늬 패턴을 인쇄할 수 있는 공장을 직접 찾아 다녔다.

2007년 12월부터 한 달 동안 100군데가 넘는 전국의 패널 공장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지난 1월 광주에서 인쇄를 제일 잘하는 업체를 발견했다. 박 연구원은 "불가능하다는 소리를 수십 번 들었지만 철판에 꽃무늬 패턴을 새기는 기술력을 개발하면 그만큼 공장의 명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결국 한 달간의 밤샘 작업 끝에 벗겨지지 않는 인쇄 잉크와 철판의 적정 건조 온도,잉크의 색깔을 찾아 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99만원 저가형 드럼업 세탁기다.

일에 미친 사람은 박 연구원뿐이 아니다. 채경아 홍보팀 차장은 밥 먹듯이 야근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전화하면 곧바로 박 이사를 바꿔 준다. 그는 "내가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상사가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탁기 연구개발만 20년째 하고 있는 이종칠 수석 연구원은 "세탁기를 개발하면서 드럼업을 만들 때만큼 많이 다쳐 본 적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드럼업 기술개발팀은 7명의 연구원으로 구성됐는데 이들 모두가 한 번 이상씩 골절상을 입었다. 12㎏짜리 세탁기를 하루 종일 들었다 놨다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뼈가 성할 리 없는 것.


▶▶ 내부 충돌은 고객 지향적 관점에서 해결한다

상품 기획을 맡고 있는 문지혜 과장은 "TF팀원들은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처음엔 각자의 주장이 너무 강해서 내부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잦은 충돌이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고객 지향적인 기준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드럼업의 출시일을 3개월 앞두고 지연시켰던 일이다. 계획대로라면 2007년 10월 출시해야 했지만 막판에 제동이 걸렸다. 1000여명의 유통회사 구매담당자를 불러 놓고 개선 사항을 들어 보니 세탁기 문을 15도 올리고 조작 버튼 크기도 키워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졌다. 세 차례의 수정 과정이 되풀이된 뒤 드럼업은 2008년 1월 출시됐다.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 익숙한 대우일렉은 여성 고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블로그 활동이 활발한 주부 고객 10명을 뽑았다. 이들이 '클라쎄 프로'들이다. 드럼업의 경험담을 블로그에 올려 입소문을 낸 주역들이 이들이다. 박 이사는 "결국 드럼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세탁물을 꺼내기 위해 허리를 숙여야 하는 고객들의 불편함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박신영/사진=강은구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