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닉 재산파악 수개월→2주로 단축

대법원이 모든 파산사건에 대해 채무자의 재산을 전산으로 손쉽게 조회할 수 있는 '전자재산조회시스템'을 도입함에 따라 앞으로 재산을 숨겨놓고 면책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모럴해저드'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재산조회시스템은 "법원은 필요한 경우 관리인·파산관재인 그 밖의 이해관계인의 신청에 의하거나 직권으로 채무자의 재산 및 신용에 관한 전산망을 관리하는 공공기관·금융기관·단체 등에 채무자 명의의 재산에 관하여 조회할 수 있다"라고 규정된 개인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29조에 따라 마련됐다.

재판부가 직접 요구하거나 채권자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였을 때만 해당 채무자의 재산 조회가 가능하다. 법원의 담당 직원이 조회신청서를 작성하고 조회대상기관을 지정해 보내면 이에 따른 회신을 받는 방식이다. 따라서 우편으로 보낼 때 내야 했던 3000원가량의 송달료는 내지 않아도 된다.

파산·회생 사건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개인·기업이 이를 신청하면 법원이 심사를 해 선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사과정에서 신청인이 직접 작성한 재산 현황 서류를 검토해 빚 갚을 능력이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 파산·회생 선고를 한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의심이 가면 신청인을 불러 심문하기도 하고 신청자에게 모든 거래통장사본 제출을 요구하기도 한다. 문제가 없으면 파산·회생 선고를 한 뒤 이를 채권자들에게 알린다. 채권자들이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빚에 대한 면책결정을 내리고 이의를 제기하면 확인 작업을 한 뒤 면책 여부를 결정해 왔다.

지금까지는 이 과정에서 재판부가 채무자의 재산 현황을 일일이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신청인이 허위 진술을 하고 통장 사본도 일부만 가져오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금융거래 현황 등을 사실 조회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일일이 수작업으로 신청서를 작성해 200여개에 달하는 기관에 우편송달을 해야 해 업무 부담이 커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채권자들도 채무자의 재산 현황을 모두 파악하는 데 수개월이 걸리고 송달료를 조회 대상 기관별로 내야 하는 비용 부담도 있어 이를 신청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 지난해 4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이던 채권자 측의 재산 조회 신청은 8건에 불과했을 정도였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의 권순민 판사는 "한 달에 3000~4000건 들어오는 파산·회생 신청자들의 재산 현황을 일일이 우편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업무 부담이 지나치게 커 그간 이용하기 힘들었다"며 "전산망을 통해 재산 파악이 가능한 만큼 엄격하게 심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도 한계는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파산·회생 신청인들이 현금을 집에 보관하거나 가족·친지 명의로 재산을 숨겨 놓은 것은 파악할 수 없다. 법원은 이를 막기 위해 의심가는 신청인에 대해 파산관재인이 자금 추적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법원 측은 이와 더불어 은행 등 채권자들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IMF 당시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 투입으로 살아난 은행들이 자신들의 채권을 회수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파산 사건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건은 10% 정도 인데 이 중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일부를 빼고는 거의 없다는 것이 법원 측 설명이다.

권 판사는 "금융회사들은 파산자들의 부실채권을 대손충당금으로 떨어버리면 재무제표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파산사건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채권자 스스로도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