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쿠퍼 <한국HSBC은행장 simoncooper@hsbc.com>

한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느낀 가장 놀라운 점은 한국인의 자녀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이다. 한국인 동료들은 지금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들 말하지만,아직도 한국인이 자녀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지를 보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한국 부모들은 자녀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자녀 교육에 많은 에너지와 돈을 쓴다. 심지어 평생 모아온 저축을 다 쏟아 붓기도 한다. 나아가 자녀가 결혼하게 되면 신혼집과 살림살이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그러다 손자나 손녀가 태어나면,딸과 며느리가 계속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꺼이 (혹은 어쩔 수 없이) 손자 손녀의 양육을 맡기도 한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HSBC은행의 여직원들에게 물어보면 많은 경우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 아이를 키워주신다고 한다.

얼마나 큰 희생인가! 한국 부모의 자녀 사랑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육아 용품이나 교육 산업에 불황이 없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의 희생적인 자녀 사랑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기러기 아빠'다. 자녀의 영어 교육을 위해 해외에 자녀와 부인을 보낸 후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한국에 남아 일하는 기러기 아빠는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두 번 가족과 상봉한다. 기러기 아빠는 오직 자녀를 위해 이 같은 외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낯설지만 기러기 아빠는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에서 가장 진한 부성애의 상징인 것 같다.

10대 때부터 독립심을 키우도록 교육받은 나에게 한국 부모의 헌신은 문화적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경제가 성장할수록 가족 간의 유대감은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예외인 것 같다. 부모의 희생이 한 세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 같은 한국 부모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끝없는 희생이 한국 경제의 기적을 가능하게 했으며,또한 지금의 경제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 믿는다.

두 딸을 둔 아버지로서 나 또한 자녀 교육에 대해 늘 많은 생각을 한다. 한국인의 자녀사랑을 보면서 앞으로 나의 아이들을 한국식으로 키울 것인지,아니면 내가 자란 방식으로 키워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절충안이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