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새것 취하는 일은 '고통' 周易(주역)서 가르쳐

위기해법 '글로벌 인재포럼'서 찾길

우리 동양사회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자연의 이치와 삶의 방식을 일러주던 지혜의 보고로 주역(周易)을 빼놓을 수 없다. 주역은 조상들에게 살아가면서 당면하는 여러 상황을 이해하고 걸맞은 극복 방안을 제시하는 지침서 역할을 해왔다. 주역에서 제시하는 여러 괘 중 혁괘(革卦)는 과거의 모순과 어려움을 그대로 감내하기보다는 버리고 극복해야만 세상 만물이 다시 바르게 자리잡을 수 있다는 변혁의 도를 논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기존 질서에 대한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내적으로도 산업화를 이끌었던 대량생산방식,추격형 산업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된 지 오래 됐다. 따라서 이제 과거를 뒷받침해 온 획일적 교육의 틀을 넘어야만 하는 시점에서 혁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주어진 상황을 타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래의 관점에서 변화의 방향이 올바르다고 해도 집단 간 이해가 얽혀 갈등과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고,익숙한 관행이 주는 안락감 때문에 쉽사리 변화를 수용하기 어렵다. 그러니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하는 데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보았던지,변화를 논하는 혁괘에서 오죽하면 가죽을 뜻하는 혁(革)자를 썼을까.

과거 우리의 선배들은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인력양성과 과학기술 발전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이를 기반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140여개 빈곤 국가 중 하나로 출발했던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13위권 규모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한편 획일과 규율이 깊숙이 뿌리내린 교육현장과 산업계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학교육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노동인구의 감소로 국가 성장잠재력의 저하를 초래할 것이며,자본과 기술 이동에 이어 국가간 창의적 인재 확보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점수따기식 입시경쟁,획일적 교육과정,과도한 사교육비 등의 병폐로 경쟁력이 지체되고,획일적 평등이념과 과잉규제 등으로 인해 국민의 다양한 교육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자율과 다양성을 핵심가치로 삼아 교실현장의 변화를 유도해 창의적 인재,글로벌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우리 기업이 더 이상 국내기업으로 머물러서는 성장할 수 없듯이 인재를 육성하는 관점도 국제적 시각으로 변해야 한다. 미래지향적 글로벌 관점에서 우리의 인재를 기를 수 있는 교육시스템 전반의 개혁만이 급격한 세계 경쟁 속에서 우리 미래와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다.

세계 경제가 촘촘하게 얽혀 있고,지식과 자본의 이동만큼이나 인재도 국경과 영역을 넘나드는 가운데,교육시스템의 혁신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국가나 기업 모두의 고민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창조적 인재를 길러내고 활용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의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제 금융질서의 재편과 함께 새로운 리더십 형성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이 시점에 각국의 정부,국제기구,대학,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참여하는 '글로벌 인재포럼'을 통해 우리의 상황을 국제적 관점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5일 개회식을 갖는 글로벌 인재포럼은 우리가 지닌 많은 구태를 직시하고 세계적 석학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 변화의 방향과 전략을 제시하는 장이 될 것이다. 표범이 절기의 변화에 맞춰 털을 갈고 가죽의 아름다움을 구하는 것처럼,대인호변(大人虎變) 군자표변(君子豹變)의 자세로 미래를 열어나가야 할 시점이다. 이 가을에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주역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가치가 새삼 느껴진다.